고객과의 약속위반에서 시작된 머지포인트 사태가 이제는 경영진의 횡령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머지포인트는 고객이 자금을 미리 충전한 뒤 대형마트, 편의점 등 전국 6만여 가맹점에서 20% 할인된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선불지급수단이다. 그런데 발행업자가 아무 예고도 없이 그것을 쓸 수 있는 곳을 음식점으로 대폭 축소했다.

낭패를 본 고객들이 "금융당국은 뭐하고 있었느냐"며 원망을 터뜨리자 일부 언론은 한국은행의 책임까지 거론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에는 선불전자지급수단의 소비자보호 조항이 있었는데, 한은의 반발로 법안처리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거기 놀란 한은은 출입기자들에게 급하게 해명자료(입장문)를 뿌렸다.

유감스럽게도 입장문 배포는 지혜롭지 못했다. 그 입장문에서 한은은 "전금법 개정안에서 소비자보호 장치는 좀 더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는데, 한은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다. 정작 금융소비자 보호를 맡고 있는 금융위를 향해 그런 훈수를 두는 것은 난센스일 뿐만 아니라 역풍을 부른다. 최근까지 전금법 개정안을 반대할 때는 국민이 아닌 기관의 이익만 생각했다는 반증이 되기 때문이다. 그 입장문이 금융통화위원회가 아닌 한은 직원들의 생각이라면, 기관 간 감정싸움만 더 커질 수 있다.

한은의 지혜롭지 못한 대응 때문에 사태의 본질이 흐려졌다. 머지포인트 사태는 전금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진 것과 거리가 멀다. 버스, 지하철, 택시 등에서 두루 쓸 수 있는 교통카드(선불전자지급수단)를 여객선 탈 때도 쓰도록 하는 것을 전금법이 금지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용처를 줄이는 것도 전금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

문제는 상거래에서 계약이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요, 상거래 질서를 관리하는 것은 금융위가 아닌 공정거래위원회다. 머지포인트는 상품권의 일종이고, 지역사랑상품권은 공정위가 다스린다. 그렇다면 정부 부처 간 사무와 책임 범위를 정확히 분장해야 한다. 그런데 전금법은 그런 고려도 하지 않은 채 금융위 소관범위를 확장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부처 간 갈등은 물론, 행정의 비효율을 초래한다. 민간의 자율도 위축시킨다.

예를 들어 입주자별로 아파트관리비를 계산하고 통보하는 일(전자고지결제업)은 아파트관리사무소를 위한 심부름에 불과하다. 아파트관리사무소와 용역업체 간의 위탁계약까지도 금융위가 참견하는 것은 금융행정의 낭비다.

금융위가 그런 허접한 일까지 만기친람(萬機親覽)하려다 보니 전금법에서 '결제'와 '자금이체'라는 말을 남용한다. 선불카드와 후불카드는 대표적인 지급수단(payment instrument)인데, 전금법 개정안에서는 그런 사업에 결제(settlement)라는 말을 붙인다. 지급과 결제의 차이가 무시되니 청산(clearing)의 개념도 흔들린다. 청산은 중앙은행에 예치된 지급준비금을 근거로 예금은행끼리 주고받을 금액을 확정하는 작업이다. 청산의 개념은 한국은행법과 은행법에서 다루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금융위는 이를 전금법 개정안에 억지춘향 식으로 넣었고, 그것이 한은과 마찰을 빚는 근본 원인이다. 금융위 안에서도 부서 간 이견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금법을 다룰 때 명심해야 하는 것은 그 법이 그림자 은행업(shadow banking)을 다룬다는 점이다. 전금법은 자금의 수취(선불카드)와 여신(후불카드)을 함께 규율하고, 나아가 직불카드(은행 예금계좌에 연계된 카드)까지 감독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금법은 분명히 준(準)은행법이다.

그렇다면, 아파트관리비를 계산하고 통지하는 따위의 자잘한 일까지 전금법으로 규율하려는 헛된 노력은 접어두어야 한다. 대신 한국은행법이나 은행법과의 관계부터 꼼꼼히 따져야 한다. 참고로 미국의 전자자금이체법(Electronic Fund Transfer Act)은 은행법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은행을 감독하는 연준위원회가 동법의 시행령을 다룬다.

전자금융거래란 지급행위를 일컫는 것이고, 지급행위는 은행들의 요구불예금과 직결된다. 대표적 지급수단인 수표를 '드래프트(draft·인출)'라고 부르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요구불예금의 인출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사와 핀테크 업체들이 지급행위까지는 흉내 낼 수 있어도 결제와 청산은 흉내 낼 수 없다. 결제와 청산은 은행들의 지급준비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현행 전금법과 그 개정안은 그 점을 놓쳤다.

결론적으로 전금법이 규율하는 사업의 범위는 디지털금융 시대에 맞추어 축소되어야 한다. 그런데 더 확대하려다 보니 디지털금융의 발전과 혁신이 오히려 더뎌진다. 다른 기관과도 불편해진다. 현재의 전금법 개정안은 수준미달이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노미스마(nomisma)'는 그리스어로 화폐와 명령(법)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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