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이제 국내 자본시장뿐 아니라 경영계 및 사회 전체적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는 모습이다. 기존 재무적 수익을 중시하던 것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한 경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으며, 기업의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ESG가 과거와 다르게 앞으로도 지속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의 소위 '좋은 투자', '착한 투자'를 표방한 여러 형태의 투자들이 정부나 외부의 압력 등으로 인한 강제성이 있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제 투자자들인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 참여가 ESG라는 필터를 통해 실현돼 가는 과정으로 시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다.

ESG라는 용어는 비교적 최근의 용어이기도 하다. 다만 그 본래적인 개념은 기업의 탄생과 함께 발전해 온 근간으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이 ESG가 최근 크게 부각된 것은 지금까지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고려한 기업 경영과는 다른 뭔가가 포함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다른 무엇인가가 바로 기관투자자에게는 수탁자로서의 바람직한 책임을 수행하도록 하는 위탁자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력이라 생각한다. 과거에는 투기자본을 중심으로 극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쪽을 중심에 두었다면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가치와 이익 추구를 조화시키려는 방향을 가진다. 개인투자자들 역시 투자대상기업에 대한 관심의 증대가 민간 자본시장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전에는 단기 수익률만을 찾아 투자처를 이동하던 주주들이 기업의 장기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성을 더욱 높게 평가하면서 투자 판단에 반영하고 있는 것에서도 ESG가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준다.

개인투자자들을 포함한 다른 많은 투자자 역시 이러한 ESG의 확산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기업가치 상승을 위한 주주행동주의의 일환으로 수탁자 지위에 있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투자대상 회사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ESG에 대한 관심과 비례해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스튜어드십 행동주의 더 나아가 ESG 행동주의로 발전해 나가는 추세다.

특히 팬데믹 시대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넓힐 수 있게 됐으며,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성화되면서 기업의 잘못된 평판 하나가 기업에게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오는지 체감했다. ESG에 대한 관심은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기관투자자의 입장에서 기금을 운용한다는 것이 ESG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ESG의 핵심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많은 논란도 발생하고 있다. 국민연금도 ESG를 추구하면서 기금운용의 철학과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에 있어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기준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수탁자 책임'이다. 그리고 ESG를 수탁자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운용철학의 흔들림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의 경우 한 세대를 운용 기간으로 하는 장기성 기금으로 지속성 있는 투자가 수탁자책임의 기본이 되기에 이 과정에 ESG를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과 지속가능성에 부합하는 나름 좋은 수단으로 여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단이라 함은 ESG 외에도 수탁자책임을 수행하는 다른 여러 수단이 병렬적으로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전히 국내 자본시장에서 많은 기관투자자, 특히 민간 부문의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에 대한 투자에 있어서 수탁자 책임 이행을 기준으로 한 주주권의 행사가 과연 바람직한지, 아니면 더 나아가 자본시장에서 금융기관들의 본연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문조차도 최근 많은 도전을 받는 듯이 보인다. 또 최근 금융기관이나 기관투자자들이 그 본래의 기준보다 ESG에 매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관투자자나 금융기관들에게 ESG를 강조하기 전에 가입자에 대한 수탁자 책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책무는 국민연금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핵심 가치다.

실제 기관투자자는 타인의 자산을 운용하는 수탁자로서의 의무와 동시에 운용주식을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주주의 권리를 가진다. 주주로서 투자대상 회사의 가치를 높여 고객의 이익을 도모하는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기관투자자의 지위와 역할 등에 대한 수탁자 책임 혹은 스튜어드십 코드 등 과거 선언했던 내용에 대한 실무 지침이나 기준 등을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싶다. 2018년 7월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도입한 이후 많은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 원칙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확인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도 각 위탁사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한 이후 의결권 행사 내역을 점검하는 수준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ESG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현실에서 최근 부각되는 ESG는 매우 반갑다. 최소한 ESG를 통해서라도 이를 이행하는 과정만이라 해도 수탁자 책임을 실무적으로 이행하는 것과 유사할 것이라는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또 공시될 수 있는 부문과 그 효과를 기대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공시만이라도 제대로 정착된다면 큰 소득이 될 것이다. 무엇이든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원종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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