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2017년 투자열풍 때는 그 정체성을 두고 형이상학적 담론을 주고받다가 지금은 과세와 제도화라는 좀더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의 사례를 쉽게 들먹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외국의 사례가 엉뚱하게 해석되는 일이 흔하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했느니, 인도가 가상자산을 강력히 규제할 것이라는 뉴스가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것이 그 예다.

엘살바도르는 인구 60만명의 나라다. 통화주권이 흔들려 자국통화가 아닌 미 달러화가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나라가 1천800만개나 발행된 비트코인 중 고작 400여개(0.002%)를 매입해서 비트코인 국제가격이 올랐다거나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다. 20세기 초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금본위제도를 천명하는 바람에 당시 세계 금값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인도의 규제가 가상자산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보는 견해도 마찬가지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이미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상회하는 상황에서 인도의 조치로 국제가격이 출렁인다면 인도가 가상자산 세계의 G2쯤 되어야 한다. 터무니없는 가정이다.

가상자산의 제도화를 둘러싼 '외국의 사례'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우리 정부도 '외국처럼' 가상자산을 제도화해 달라고 성화다. 그리고 현재 금융위원회가 만든 가상자산 법률은 해당 시장의 관리를 지나치게 민간자율에 맡겼다고 불만을 토한다. 도무지 어떤 나라의 무엇을 보고 어떻게 제도화하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한마디로 말해서 업계와 투자자들의 아우성은 아이들의 '발작(tantrum)'에 가깝다. 정부를 비아냥거리거나 성토해서 시선을 끌려는 노이즈마케팅이라고 보인다.

물론 정부의 잘못도 있다. 문화예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체불가능토큰(NFT)에 대해 금융위는 "현행 규정으로도 과세가 가능하다"면서 내년부터 당장 과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투자하는 사람이 예술품으로 보고 있는데 금융상품과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금융위가 과세를 자신하는 논거를 찾기 힘들다. 굳이 과세방향을 밝힌다면 문화체육관광부나 기획재정부가 나서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의 발언은 NFT의 정체를 모른다는 자기고백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금융위의 권한을 넓히려는 식탐이다.

그럼에도 잘못의 크기를 따진다면 가상자산업자들의 잘못이 훨씬 크다고 보인다. 2018년 국회공청회 등에서 뜨겁게 논의됐던 쟁점의 하나는 '블록체인기술과 가상화폐는 분리가능한가'였다. 그때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기술은 육성해야 하지만 가상화폐는 별개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무수한 업계관계자와 투자자들이 '블록체인기술과 가상화폐는 분리 불가능하다'면서 필자와 같은 사람들을 '무식하다'고 핍박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블록체인기술에 기반하는 NFT는 기존 가상화폐와 완전히 다르다'고 흥분한다. 블록체인기술과 가상화폐가 별개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이처럼 업계 관계자들은 투자자를 유인하고 시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자기 말을 뒤집는다.

언론의 책임도 있다. 지금 언론기관들은 가상자산에 관한 크고 작은 해외동향을 무비판적으로 빨리 보도하는 데 급급하다. 대신 국내에서 우리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한 분석과 보도는 엉성하다. 덕분에 우리 정부가 외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잘 모른다. 그러는 바람에 '가상자산에 과세를 늦추라'는 투자자들의 응석과 아우성이 힘을 얻었다.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나라에서는 '투자자들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과세가 연기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은 감춰진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코로나19뿐만 아니다. 가상자산도 있다. 그러니 가상자산을 둘러싼 논의가 정상을 되찾아야 한다. 아무리 대선의 계절이라지만, 근거 없는 정부 매도나 세금 발작에 지나치게 온정을 베풀면 포퓰리즘이 되기 쉽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노미스마(nomisma)'는 그리스어로 화폐와 명령(법)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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