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제일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빈 기자 = 이찬진 제일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는 31일 "국민연금이 환율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해외자산 매입 속도를 늦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찬진 변호사는 이날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찬진 변호사는 지난 8일부로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임기가 종료됐다. 사실상 지난 4월 29일 2차 기금운용위가 마지막 활동이었다. 이 변호사는 기금위의 참여연대 추천 위원으로, 2018년 초부터 시민단체 대표 위원으로 기금위에 합류해 1차례 연임, 총 4년간 자리를 맡았다.

기금위 전에는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국민연금 산하 위원회에서만 13년 넘게 활동한 전문가로, 기금운용본부 내 웬만한 실장이나 팀장들에 비해서도 국민연금 경력이 길다.

기금위원들은 비밀 유지 조항에 따라 임기 중에 언론과의 인터뷰가 엄격하게 통제된다. 이찬진 변호사도 지난달까지는 언론에서 전화 한 통 닿기도 쉽지 않았다. 4년 임기가 끝난 만큼,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둘러싼 이모저모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다음은 이찬진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해외자산 매입 속도를 계속 유지할지 관심이 몰리는데.

▲안 그래도 국민연금의 해외자산 비중이 계속 늘어나 2020년 9월쯤부터 8개월여간 투자정책위를 통해 환 정책을 검토했다. 당시 결론은 국민연금이 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하다는 거였다. 하루 외환시장 거래규모가 총 10조 원이라면 국민연금 거래 규모는 약 1천억 원, 많아야 2% 정도로 집계됐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환율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해외자산 매입 속도를 늦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당시 환 시장 영향력이 적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외환 자체를 별도의 자산군으로 관리할지 논의하기도 했다.

-해외자산은 장기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늘릴까?

▲해외 투자 비중은 현재 42%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1년에 2~3% 정도 늘려서 50% 될 때까지 늘릴 것 같다. 50%가 기금위와 기금운용본부가 암묵적으로 생각하는 선이라고 느꼈다. 수익률만 따지는 전문가 쪽은 해외 자산 비중을 70%까지 올려야 한다고도 얘기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주인인 국민들이 대부분 국내 기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자산 비중을 지나치게 줄이는 게 주인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가 있어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

-연금 성숙기의 자산 처분 문제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해왔다고 했는데.

▲ 해외자산 비중을 결정하면서 연금 성숙기 자산 처분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지금처럼 연금 지급이 늘어나다 보면 미래에는 해외자산을 처분해 연금을 지급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지금은 해외자산을 매수할 때 속도 조절을 통해 환율이나 자산가치에 주는 영향이 작도록 관리할 수 있겠지만, 연금성숙기에 연금 지불을 위해 단기간에 급하게 해외자산을 팔다 보면 원화가치가 폭등할 우려가 있다. 이 점이 기금위에서 늘 고민거리였다.그래서 급격한 매도가 찾아오지 않도록 기금 규모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운용도 중요하지만, 보험료율 등 제도적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연금 성숙기 유동성 위험은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비중을 줄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연금 성숙기에 국내 주식비중이 큰 기금이 1년에 시장 비중의 1~2%를 계속 팔 경우 주가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그렇게 되면 보유 중인 자산가치도 함께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국내주식 비중을 계속 줄이는 이유는 뭔가?

▲연금 성숙기 이슈 외에 재계의 강력한 요구도 있었다. 코스피 200 지수를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목까지 다 차올랐다. 웬만한 메이저 회사들은 보유지분이 10~12%가 돼서, 주인이 있는 회사는 2대 주주, 주인이 없으면 1대 주주가 되는 상황이다. 그러면 이게 재무적 투자인지, 경영권 확보를 위한 투자인지에 대한 논쟁에 계속 휘말리게 된다. 또 하나는, 통계적 수익률이 국내주식보다 해외주식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는 점이다. 자산배분 통계모형만 갖고 결정한다면 국내주식 비중은 '0'으로 하고 해외주식에 자산을 몰아줘야 한다. 그럼에도 국내주식을 놓을 수 없는 건, 역시 기금의 돈이 대부분 국내 기업 직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주식 비중을 어느 수준까지 줄일까?

▲국내주식 비중을 현재대로 유지하기만 해도 국민연금의 국내 기업 지분이 지금보다 늘어나게 돼 있다. 주가 지수보다 기금 규모가 커지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그러니 지분 절대액이 지금처럼 유지되는 것을 목표로 국내주식 비중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이 선보다 더 줄이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문제가 된다.

-국내주식 비중을 줄이면 국내 시장에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도 있는데.

▲현재 퇴직연금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퇴직연금이 국내주식 시장에 들어오는 포지션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퇴직연금이 들어오면서, 국내연금이 더 투자하지 않는 부분을 커버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보고 있다.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을 굳이 사용자, 근로자 대표성을 갖도록 할 이유가 있느냐는 비판이 있다. 기금운용위원 전문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국내주식 문제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기금운용을 오로지 수익률만 생각하는 운용 전문가에게만 맡기면 해외로 다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놓을 수 없는 건 국내 노동자들이 이 국내 기업들에 있고,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어떻게 다 해외로 빼냐는 문제 때문이다.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를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전문가의 영역에만 남겨두면 안 되는 것이다.또 지난 정권에 기금위 개최 빈도를 늘리면서 위원들의 전문성 문제도 좀 더 개선됐다고 본다. 초기에는 회의를 연간 5~6번 하다가 몇 년 전부터 최소 10번 이상하도록 하고 있다. 1달에 1번꼴로 회의를 하니 위원들도 좀 더 연속성을 가지고 회의를 준비할 수 있다.

-기금위 투자 방향에 대한 제언은 없을지.

▲국내 스타트업 벤처 케피탈에서 적극적으로 포지션을 가져가야 한다.국내 주식시장 비중을 줄이는 것과 관련해 논란이 많지만, 결국 국내 주식은 유통시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오히려 국민연금은 생산적인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미래 세대 경제활동 인구들이 연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하며, 그런 방향으로 투자도 해야 한다. 그래서 작은 비중으로라도 자산배분안에 스타트업 사모 벤처를 넣어놓고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기금운용 본부 쪽에서는 '좋은 얘기지만 VC는 우리 사이즈에는 못한다'는 입장이더라.

-기금운용위원회 운영 관련해서 아쉬웠던 점은?

▲위원회에서 안건을 제안하는 데 한계가 있다. 20명 중 3분의 1이니까 8명이 함께 제안해야 한다. 4~5명까지는 쉽게 의견수렴할 수 있지만 8명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복지부가 준비한 안건 외에 독립적으로 안건을 제안하기는 아주 힘들고, 대한항공 한진칼 같은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 외에는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오랜 국민연금 위원 활동을 마치는 소감은?

▲국민연금 산하 위원회에서 13~14년을 일했고, 기금본부 내의 어떤 사람보다 고참이다(웃음). 서당 개 3년이라고, 이제 나름대로 기금운용위와 관련해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시야와 약간의 전문성을 갖춘 것 같은데, 알만할 때쯤 그만두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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