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시작된 국민연금의 환리스크(FX risk) 관리방식 변경이 국내외환시장의 화두가 된 지 상당히 오래됐다. 국민연금은 해외자산에 투자할 때 환율스와프(FX swap), 통화스와프로 환리스크를 헤지(Hedge) 또는 중립화시켰던 방식에서 헤지를 하지 않고 현물환매입만 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연간 몇백억달러를 매입하는 외환시장에서의 주요 달러 매수주체가 됐다.

첫째, 매크로 헤징(Macro Hedging)의 역설이다.

일반적으로 해외자산에 대한 환리스크를 헤지한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쇼크(shock)가 발생하면 해외투자자산의 가격이 하락하고 국내주식 하락과 함께 안전자산 선호심리에 따라 달러-원 환율이 상승한다. 이런 경우 해외투자자산에서 평가손과 더불어 해외외화자산변동분(감소)과 선물환의 외화부채(고정)의 불일치(선물환포지션의 초과매도 oversold position)로 이중의 손실을 발생시킨다. 이를 회피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 환리스크를 오픈(open fx risk)시켜 투자 수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공격적인 환리스크 관리기법을 매크로 헤징이라고 한다. 공격적인 헤지펀드(Hedge Fund)나 액티브펀드(Active fund)들이 활용하는 방식이다. 수익성 추구 차원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전략같이 보인다.

하지만, 공적기금인 국민연금의 현재와 같은 전략은 지속적인 대규모 달러 수요로 원화를 더욱 약화시키고 국내거시경제의 불안도 가중한다. 국내증시에서 환리스크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셀코리아(국내주식 매도)를 자극해 추가적인 환율상승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기금 전체규모의 약 17%를 국내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평가손은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환율에 대한 목표수익이 설정돼 있지 않은 국민연금의 경우 향후 원화절상(환율하락) 시 대규모 환차손이 발생해 연금 수익률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환리스크를 지속적으로 오픈(open)시키는 것은 그 리스크를 연금수혜자인 일반 국민들에게 100% 전가함으로써 중기적 관점에서만 수익성 제고에 공격적으로 보일 뿐 장기적으로는 매우 소극적인 관리라고 생각한다.

둘째, 저수지에 물만 담으면 언젠가 둑이 무너진다.

2020년 국회예산처 추정에 따르면 국민연금 규모는 2038년 정점(약 1천70조원)에 이른 후 5년 만에 소진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만약 현재의 환리스크 관리방식이 계속 유지될 경우 2039년 이후 5년 동안 약 3천400억달러의 해외자산(미 달러)을 팔아 원화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1천70조원*40%(해외투자비중)/1,250원=약 3천400억달러). 현재처럼 연금이 계속 불입돼 일정부분(40%)을 계속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달러 수요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연금지출이 연금납입을 초과하기 시작할 때는 대규모 달러 공급요인이 돼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만 할 수 있는 외환당국에서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원화의 엄청난 절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현재의 달러 강세는 지속될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국내외환시장의 수급상의 구조적 변화(개인 및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급증에 따른 수요우위 시장)가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원화의 가치도 국내 요인뿐 아니라 해외요인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 만큼 향후 미국 달러의 초강세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미국 정부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입장에서 지금 당장 인플레이션이 '발등의 불(top priority)'이기에 금리 인상과 더불어 달러 강세에 관망의 자세(미국 입장에서는 수입 물가의 하락)를 취할 것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다소 진정된 이후 경기침체가 이슈가 되면 미국 제조업의 가격경쟁력 상실과 대규모 무역수지의 악화로 급격히 그 스탠스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우 글로벌 달러 약세는 자명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4천6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보유한 한국의 외환당국에서도 국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지속적이고 비정상적인 원화 약세에 결코 방관만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에 대한 '노헤지(No hedge)' 전략이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제는 분명 거시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환리스크 관리방식에 적절한 유연성(Flexible dynamic macro hedging strategy)을 부여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국민연금 내부기준(가장 중요한 부분)에 따라 달러화가 고평가됐을 경우 추가적인 해외자산 투자시 노헤지 전략이 아닌 스와프로 집행하고,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과거 '헤지하지 않은(unhedged)' 일부 포트폴리오에 선물환 매도를 통한 환차익을 실현한다면(선물환의 공급은 현물환의 공급과 같이 외환의 공급이다) 국민연금의 실질적 수익성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연금의 선물환 공급은 달러-원 환율의 추가적인 급격한 상승을 억제해 외환시장 불안이 해소됨과함께 거시경제안정에 다소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저수지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방법은 적절하게 물을 방출하는 것이다. (이성희 전 JP모건체이스은행 서울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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