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감독원이 최근 우리은행의 횡령 사고와 신한·우리은행에서 발생한 이상 외화 송금 건에 대한 검사 중간에 잠정 결과를 발표한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이 최종 발표까지 보안을 유지해 왔던 금융회사 검사 진행 상황에 대해 검찰 수사처럼 중간발표한 것이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 26일과 27일 이틀 연속으로 횡령과 거액 해외송금 검사에 대한 잠정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은행 한 직원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많은 700억 원에 가까운 회삿돈을 빼돌렸고 그 과정에서 1년 넘게 무단결근했는데도 은행이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금감원은 은행권에서 7조 원대 규모의 수상한 외화 송금이 일어난 사실을 파악하고,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환 환치기 등 의심 정황이 있다고도 밝혔다.

뉴스 자체로도 놀랄 만했지만, 금융회사들은 금감원이 '왜' 발표를 했는지 그 배경을 파악하느라 더 분주한 모습이다.

금감원은 우리은행 횡령 건과 은행권 외화 송금 거래와 관련한 불필요한 의혹이 증폭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사 중간에 점검 결과를 공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검사가 당초 예상보다 오래 걸리면서 시장에서는 가상자산거래소 연루 등 다양한 의혹들이 나오고 있는 터였다. 그럼에도 금감원이 정황 파악만 가지고 결과를 발표하는 적은 없었기에 금융권은 다소 의아했다.

금감원은 통상 검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제재하는 데 있어서도 제재심의위원회 안건 상정 여부도 확인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제재안이 최종 의결되고 수개월이 지나서야 공시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도로 폐쇄적이다.

금감원이 사모펀드 사태나 카드사 정보 유출 사고 등과 같은 다수의 국민 피해가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커질 수 있는 건이 아닌, 한 직원의 개인 일탈과 관계된 횡령 사고나 아직 명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외화 송금 의혹을 굳이 발표할 이유가 있었나 시장은 의문이 들었다.

금융권에서는 검찰 출신 이복현 원장의 업무 스타일이 묻어나온 결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금감원과 달리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보통이다. 검찰 수사는 워낙 기간이 길어지는 사건이 많다 보니 부장검사는 성과 평가 등을 위해서라도 이를 활용해 국민적 관심도를 높인다. 또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는 사건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향후 사건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게 원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여론을 살피며, 주도권을 쥐고 나갈 수 있다.

금감원의 이번 중간 검사 발표도 이러한 검찰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횡령 사고나 해외송금 건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시스템과 관련한 금융당국의 향후 제재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검사로 인식돼 왔던 만큼 의미하는 바가 크다"면서 "중간 검사 발표 과정에서 향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제재 가능성과 그 수위도 가늠해볼 수 있는 멘트들도 다수 나와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우리은행 직원 횡령 건 브리핑에서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 안 한 것으로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금감원이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확신'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복현 원장도 지난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해 "문제가 된 은행들이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왜 미진했는지 엄하게 책임을 물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가상화폐와 관련한 이상 해외송금 사례에 대해서도 불법성을 확인했다며 검사 대상을 광범위하게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은행들의 내부통제 문제가 있다고 확실히 짚고 이에 대한 제재에 나설 것이란 '시그널'을 줬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마치 검찰이 중간 수사 발표를 통해 향후 전개 가능성을 미리 암시하는 것처럼.

시장은 이 원장이 취임 두 달째를 맞아 본인의 색깔을 점점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검찰의 금융·증권 범죄 전문 수사 조직인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합수단)과 함께 펀드 사태 재규명 등에 나설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스탠스로 보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중징계 취소 항소심 패소 건에 대해서도 상고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면서 "중간 검사 결과 발표를 시작으로 검찰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책금융부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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