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을 비트코인과 더불어 '가상화폐'로 묶어 표현하면서 생기는 오해가 있다. 대중들은 '화폐'라는 단어 때문에 비트코인이 카카오페이처럼 일상생활의 소액 결제를 위한 기술이고 이더리움은 그보다 조금 업그레이드된 기술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처럼 돈이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차이점을 논하기 전에 공통점을 먼저 짚어보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모두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다. 탈중앙화는 다르게 표현하면 '주인 없는' 또는 '분산된'이다. 이 개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인류가 지난 30년간 사용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또 하나의 탈중앙화 네트워크를 상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시발점은 군사 기술이다. 냉전 시대 소련과 대치하던 미국 정부는 핵전쟁으로 초토화돼도 건재할 통신망을 구축해야 했다. 기존 통신망은 스위치보드와 같은 정보 전달자를 필요로 하는데 전시에는 공격 대상이 돼 취약점으로 작용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보 전달의 주체가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분산된 정보 전달망을 구상하는데 이것이 훗날 인터넷의 모태가 된 알파넷(ARPANET)이다. 알파넷은 정보 전달의 기능을 스위치 보드와 같은 중앙화된 주체에 의존하지 않고 네트워크 참가자들에게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구현됐다. 정보 전달의 기능을 다수의 라우터에 분산시키는 네트워크인 것이다. 알파넷은 이러한 틀을 기반으로 수십 년간의 연구를 거쳐 지금의 인터넷으로 진화했다. 인터넷은 어느 한 국가가 통제하지 않는 소유권이 분산된 정보망으로 발전했고 1990년대 들어 대중화된 이후 천문학적 규모의 가치 창출 기반이 됐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이러한 인터넷의 기능을 더욱 확장한 탈중앙화(주인 없는, 분산된) 네트워크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인터넷의 기존 기능인 '정보 전달'에 '가치 전달'을 추가했다.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코딩 실행'을 추가했다. 인터넷이 정보 전달의 기능을 라우터에 분산했듯이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가치 전달을 기록하는 장부 관리를 특정 중개인이 아닌,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채굴자 및 노드 운용자)에게 분산시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인터넷과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분산시킨 대상이 각각 정보 전달자와 장부 기록자였다면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분산 대상은 '코드 실행자'다. 이더리움은 특정 중개인이 아닌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컴퓨터 코드를 실행해 중개인 없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구현한다. 그래서 흔히 안드로이드나 iOS 같은 컴퓨터 운영체제(Operating System)에 비유되기도 한다. 카카오톡이라는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안드로이드나 iOS 같은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작동하듯이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작동하는 것이다. 단, 안드로이드나 iOS는 각각 구글과 애플이라는 운영 주체가 존재하고 운영 주체가 어떤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통제한다. 하지만 이더리움은 다르다. 인터넷처럼 탈중앙화된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더리움 네트워크상에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이더리움의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나 이더리움 재단의 허가가 필요 없는 것이다. 이더리움상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는 그 프로그램의 실행 주체가 분산돼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서비스 제공자는 특정 주체가 아닌 네트워크 자체다. 다르게 표현하면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의 기능이 기존의 정보 전달에서 각종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확장된 것이다.

이것이 왜 필요할까. 인터넷이 인류에게 왜 이로운 기술인지 생각해보자. 지식이란 한때 특혜받은 극소수만의 전유물이었다. 아무 마찰 없이 자유롭게 정보가 흐르는 공공재인 인터넷 덕분에 이제는 모두가 기본 권리로 지식을 누리게 됐다. 따라서 인터넷과 같은 공공재의 기능이 프로그램 실행으로 확장되면 그만큼 인류가 누릴 수 있는 기본 권리의 영역이 확장된다. 디파이가 좋은 예다. 전 세계에서 은행계좌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17억명이다. 전체 성인 인구의 반에 해당한다. 그 많은 사람에게 금융 서비스는 일부만 누리는 배부른 특혜다. 이로 인해 이들은 유의미한 경제활동조차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리적 제한, 미비한 사회제도, 정치적 차별 등 다양하다. 다만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이더리움이라는 공공재를 통해 금융서비스가 자동화된 소프트웨어 형태로 제공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디파이다. 디파이는 금융 기반이 갖춰진 선진국에서도 많은 메리트가 있다. 매켄지 보고서를 보면 현재 글로벌 금융시스템은 300조달러의 자금 관리를 위해 5조달러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중개인 없이 제공되는 소프트웨어를 서비스화(자동화)하면 이 비용을 수백분의 1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30년 전 수천만원 했을 영상통화 1시간의 비용이 인터넷이라는 공공재 덕분에 거의 무료가 된 것을 생각해보면 납득이 간다.

탈중앙화된 네트워크상에서 제공되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이더리움 생태계에 우수한 개발자들이 모이고 있다. 이 중에서 성공하는 개발자는 일부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도가 헛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인터넷 대중화 이후 탈중앙화된 정보망인 인터넷 인프라를 기반으로 창출된 천문학적 규모의 가치는 많은 시도와 실패에서 나오는 교훈 없이는 불가능했다. 탈중앙화된 코드 실행 운영체제인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잠재성은 그보다 더할지언정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석문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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