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이라 답하겠다. 두 인사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그들의 신념이 세계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으며, 둘째, 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셋째, 그러나 그들의 명예를 위해서 그 신념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파월은 여전히 작년의 인플레이션 오판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기에 그 신념과 행동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연준의 빠른 금리 인상은 세계 경제가 감당할 수 없다.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이후 연준의 정책금리(연방기금금리)가 제로금리(상한값 0.25%)에서 벗어나 정상화하는 시간은 만 3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때의 금리 최고 수준은 2.5%에 그쳤다. 그래서 당시에는 세계 경제가 적응하는 시간이 충분했다. 지금은 올해 3월 제로금리를 벗어난 이후 불과 8개월 만인 11월 현재 4.00%까지 올라가 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최소 0.5%포인트에서 최대 1%포인트까지 더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정도면 세계 경제는 적응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이야 자국 금리를 올려 강달러를 유지하면 수입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나 있지만, 다른 국가들은 자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 나아가 파월의 입도 말썽이다. 전 세계 금융시장과 중앙은행이 파월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최근 파월의 발언들을 의역해 보면, 이러한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세계 경제가 망가지든 말든 관심 없다. 오로지 미국 물가만 본다. 물가상승률이 2%가 될 때까지 금리 인하는 꿈도 꾸지 말아라. 그러니 우리 탓하지 말고 알아서 살아남아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공통으로 직면하는 문제겠지만, 지금 우리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 속도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금리를 올리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가계와 기업은 고통을 받는다. 따라서 연준의 그 살인적인 금리 인상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연준이 빅스텝을 하면 베이비 스텝으로, 자이언트 스텝을 하면 빅스텝으로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부분은 우리의 완만한 금리 인상 속도마저 버거운 현실이다. 국내 시중금리가 앞으로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고, 연준이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기 전에는 그 높은 수준의 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해야만 한다. 경제가 침체됐을 때 버티는 힘은 저금리에서 나온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정책 당국은 경기 침체의 강도를 완화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재정을 푼다. 그러나 경제가 이미 침체 국면에 들어서는 이때 금리마저 높아진다.




과연 앞으로 가계와 기업이 버틸 수 있을까. 현재 9월까지 집계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4%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시중은행들의 대출 금리를 살펴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7%대를 넘어섰고, 전세대출과 신용대출은 8%대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다가는 조만간 10%대의 금리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레고랜드 사태로 시작된 회사채 시장의 경색으로 대기업들도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마치 금리가 폭등하면서 기업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져간 외환위기 직후 금융시장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마저 든다. 더구나 세계 경제는 분명하게 방향을 아래쪽으로 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 수출 경기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지난 10월 수출은 거의 2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코로나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꺾인 지금, 고금리는 내수 시장마저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내년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는데, 기업은 돈을 벌지 못하고 가계는 소득이 없다면 고금리로 두세 배가 높아진 이자 부담을 경제 주체들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가계와 기업 부문에서 디폴트가 만연하고, 복구할 수 없는 위기가 그려진다.

오는 24일 올해 마지막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시장에서는 금리를 더 올릴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에 금리를 올리더라도 그 결정에 흠결은 없다. 여전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 설립의 최우선 목적이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결정은 타당하다. 우리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분투하고 있기에 앞으로의 정책 방향과 강도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가끔은 우리가 미국의 통화정책을 맹종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을 가질 필요는 있어 보인다. 금리를 무식하게 올리는 미국은 나름의 사정이 있고, 중국과 튀르키예가 금리를 내리는 것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일본이 제로 금리를 고수하는 것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한국도 나름의 사정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한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이라는 말에 혹시 '미국 연준으로부터의 독립성'도 포함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그나저나 모두가 급증한 이자 부담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지금, 앞으로 우리 시장금리는 어떻게 될지 한국은행 총재인 제롬 파월에게 물어보고 싶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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