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경림 기자 =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고 주문한 신경영 선언을 한 지 30주년을 맞이한다.

일명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도 불리는 신경영 선언일은 삼성 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점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맞는 신경영 선언인만큼, 아버지를 뛰어 넘는 새로운 경영 철학이 나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퍼스트 무버'로 환골탈태…글로벌 삼성의 도약점

4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7일은 이건희 선대 회장의 신경영 발표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삼성호암상 시상식 참석하는 이재용 회장.
연합뉴스 자료 화면.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기점으로 삼성 그룹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시작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가전 매장이었다.

제너럴 일렉트로닉(GE), 필립스, 도시바, 소니 등의 가전제품이 진열된 매장. 삼성 제품을 찾던 이건희 선대 회장은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자사 제품이 한 귀퉁이에서 먼지가 쌓인 채 있었던 것이다.

삼성 제품이 싸구려 취급을 당한 데 격노한 데 이어, 이른바 '세탁기 사건'이 발생한다. 세탁기 뚜껑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칼로 깎아내는 모습이 사내 고발 방송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독일 출장 중 임원들을 불러 모아 절치부심으로 준비한 신경영 선언을 발표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잘 해봐야 1.5류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그야말로 퀀텀 점프를 하게 된다. 애니콜 브랜드 휴대전화를 선보였고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을 개발한다. 이어 1996년 1기가 D램을 만들어 글로벌 휴대폰과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는 조직 문화도 이때 탄생한다. 대표적인 경영 정책이 '라인스톱' 제도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공장의 한 라인에서 불량 제품이 나오면 아예 라인 전체를 멈추는 라인스톱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이에 1993년 불량률은 전년도 대비 두 자릿수로 개선됐다고 한다.

또 애니콜 전화기 불량품 15만대, 약 150억원어치를 전량 폐기한 1995년 '애니콜 화형식'도 잘 알려진 품질 경영 일화다.

이후 1993년 자산 40조9천645억원, 매출 41조3천646억원이었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 자산 448조원, 매출 300조원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하는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자료 화면.

 


◇ '아버지를 이김으로써 효도한다'…이재용 회장이 보여줄 승부수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삼성전자가 주력 사업인 반도체에서 14년만에 영업적자를 냈지만 그만큼 다가올 기회에 대한 기대도 크다.

특히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대중화와 빅데이터 시대로 전환하고 있어 삼성전자는 새로운 기회를 만났다. 고성능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삼성전자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시스템 반도체도 대폭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2022년 444억 달러, 약 57조원인 AI 반도체 시장은 2026년 861억 달러(111조원)로 2배가량 확대할 것으로 전망됐다.

전장 산업 역시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기차 등 전장용 부품 시장은 시스템반도체는 물론 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등이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산업이다.

시장 성장에 착안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도 미래차 부품 산업 육성을 위해 14조3천억원 이상의 자금을 공급하고 핵심 인재 3만 명을 육성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아울러 삼성전자가 신성장 동력으로 공표한 로봇 산업도 눈여겨봄 직하다.

삼성전자는 연초 코스닥 상장사 레인보우로보틱스에 대한 지분 일부 인수를 발표하고 콜옵션 행사시 최대 주주로 오를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아울로 '봇핏'이라는 상표권을 등록해 연내 상용 로봇 출시를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다.

향후 전망도 뚜렷하다. 시장조사기관 브랜드에센스마켓리서치앤컨설팅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352억4천만 달러, 약 47조원에서 2027년까지 연평균(CAGR) 21.9% 성장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 경우 시장 규모는 약 1천400억 달러(189조원)에 이른다.

사업 확대와 더불어 이재용 회장의 또 다른 숙제는 인재 확보다.

앞서 이건희 선대 회장은 "빌 게이츠 같은 인물 서너명만 있으면 국민 소득이 인당 3만불 될 수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인당 국민총생산(GDP)은 3만3천달러를 넘었지만 빌 게이츠 같은 인물 서너명이 이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선대 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재용 회장도 이를 더욱 발전시켜 핵심 인재를 영입하고 삼성의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승현준 삼성리서치연구소장 사장이다. 승 사장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출신으로 AI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앞서 2020년 5월에는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며 미래를 위한 인재 영입에 대한 뜻을 강조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구미전자공고를 방문해 "젊은 기술인재가 제조업 경쟁력의 원동력이다"며 "현장 혁신을 책임질 기술 인재들을 응원하겠다"고 언급했다.

◇ "역사는 반복된다"…1993년의 '데자뷔' 보이는 2023년

신경영 선언이 발표된 1993년의 국제 정세 및 경제 상황은 현재와 유사하기도 하다. 먼저 소련이 무너지면서 냉전 체제가 종료되고 유럽연합(EU)이 처음 생기는 등 지정학적 역동성이 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태우 정부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간 첫 해이고 미국 역시 조지 H.W. 부시에서 빌 클린턴으로 대통령이 바뀌면서 진보 정당이 약진했다. 일본 역시 처음으로 자민당의 55년 독주가 무너졌다.

경제적으로는 고물가와 내수 부진, 저성장에 시달리던 가운데 PC통신과 인터넷 등이 퍼지는 '정보 혁명'의 태동기이기도 하다.

2023년도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등 지정학적 변동성이 대폭 커진 상황이다.

인플레이션과 수요 부진, 저성장이라는 경제 상황도 30년 전과 비슷하다. 여기에 미국은 사상 최대 부채 한도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과학법(CHIP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글로벌 산업 패권을 쥐락펴락하려는 의도도 감추지 않고 있기도 하다. EU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제 전반에서 타개책을 찾고 있다.

동시에 3차 산업혁명에 이어 데이터 사회로 전환하는 태동기에 있어 산업 구조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재용 회장은 최근의 미국 출장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20명이 넘는 기업인을 연이어 만났다. 특히 이번 출장에는 AI 분야 주요 기업인과 전문가들과 많은 교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1년 미국 출장 중에도 구글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의 기업 경영진과 만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 육성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kl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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