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은 물가 억제를 위해 거의 제로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5% 수준까지, 유례없는 속도로 끌어올렸다. 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될 만한 강도였지만 최근 양상은 예상치 못한 결과다. 물가 상승률은 9%에서 4%대로 둔화했는데 고용시장은 여전히 좋고, 주식시장은 골디락스 국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침체의 전조현상으로 여겨졌던 미 국채의 장단기 금리 역전도 믿을 게 못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나친 경기 비관론이 장기 금리에 과도하게 작용해 시장이 자기충족적인 예언을 만들어낸 결과라는 풀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미국 침체 확률과 금리 인하 시기에 관한 기존 예상이 빗나가는 현실이 펼쳐진다면 시장은 자산 가격에 대한 눈높이를 다시 맞춰야 할 수 있다. 다만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질 불확실성은 변수다. 신흥국 경제도 미국처럼 연착륙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규모가 큰 중국 경제의 불황은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모른다. 또 아직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선언이 시기상조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4.8% 올라, 연준의 목표치인 2%를 상당폭 웃돌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지연될 여건이 조성되는 상황은 우리 통화정책이 경기부양 방향으로 전환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가계부채와 환율을 주목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아직 과도한 수준은 아니지만 가계부채가 예상 밖으로 늘어나면 금리 조정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주택담보대출은 7조원 급증했다. 2020년 2월 7조8천억원 이후 3년여만의 최대다. 최근 공개된 7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위원들도 부동산 반등 조짐에 따른 가계부채 확대 가능성을 거론하며 그동안 이뤄온 정책 노력의 성과가 무산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놨다. 사람들은 대체로 미래가 과거와 같기를 바라고, 변화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고 투자전문가 하워드 막스는 지적했다. 별일 아니라던 게 큰일이 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취재보도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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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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