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는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로 "이미 우리나라는 장기 저성장 구조로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동, 연금, 교육 등의 개혁이 필요하지만 "혜택을 보는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 중심으로 논의가 되는 것 등으로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노인 돌보미 등을 언급하면서 해외 노동자 활용 문제도 언급했다. 결국 재정으로 돈 풀고 금리를 낮추는 땜질 처방으로는 안 된다는 게 총재의 결론이다. 최근 국내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78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도 꼴찌다. 거기에 급격한 고령화로 국가 재정 건전성은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암담한 현실은 가계부채에도 있다. 이달 나온 국제금융협회(IIF)의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34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2.2%로 가장 높았다. 이는 1년 전보다는 3.3%포인트 낮아진 수치지만, 조사 대상 가운데 유일하게 가계 부채가 GDP를 웃돌았다. 사실 사회 구조개혁은 정치가 물꼬를 터야 할 일이다. 이해당사자 간 첨예한 대립을 풀어내기 위한 대화를 끌어내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게 정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을 통한 해결이 아니라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부담이 쏠린다는 것은 정치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요즘 글로벌 선진국이 공통으로 겪는 일이다.
한은 총재가 물가와 금리가 아닌 쓴소리를 내놓은 것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두뇌집단인 중앙은행이 장기 과제에는 눈감고 침묵한다는 게 납득이 되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또 세계국채지수(WGBI)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선진지수를 추종하는 해외 장기 투자자들도 앞으로 문제 해결 가능성 측면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한 곳을 눈여겨볼 여지가 있다. 한은총재의 발언은 사회적 논의에 참여해야 할 시민의 주의를 환기하고,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각계의 목소리를 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모든 말에는 결과가 따른다"고 했고, 이어 "모든 침묵에도 그렇다"라는 말을 남겼다. 현 상황에서 지적 리더들의 침묵은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취재보도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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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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