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주 금융통화위원회는 물가 외의 이슈로 시선을 끌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구조개혁을 못 하고 재정, 통화정책에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 현실화한다면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견해를 펼쳤다. 이 총재의 발언은 다양한 경력과 해외에서 얻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근거 있는 지적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총재는 경제학과 교수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변신해 정부에서 경력을 쌓았고, 이후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해외기구에서 일하면서 다른 선진국이 앞서 처한 저성장과 구조개혁 실패들을 다각도로 대한민국의 현실과 비교해볼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기자회견 하는 이창용 총재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5.25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이 총재는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로 "이미 우리나라는 장기 저성장 구조로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동, 연금, 교육 등의 개혁이 필요하지만 "혜택을 보는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 중심으로 논의가 되는 것 등으로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노인 돌보미 등을 언급하면서 해외 노동자 활용 문제도 언급했다. 결국 재정으로 돈 풀고 금리를 낮추는 땜질 처방으로는 안 된다는 게 총재의 결론이다. 최근 국내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78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도 꼴찌다. 거기에 급격한 고령화로 국가 재정 건전성은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2009년부터 대한민국 정부의 GDP 대비 부채 비중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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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암담한 현실은 가계부채에도 있다. 이달 나온 국제금융협회(IIF)의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34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2.2%로 가장 높았다. 이는 1년 전보다는 3.3%포인트 낮아진 수치지만, 조사 대상 가운데 유일하게 가계 부채가 GDP를 웃돌았다. 사실 사회 구조개혁은 정치가 물꼬를 터야 할 일이다. 이해당사자 간 첨예한 대립을 풀어내기 위한 대화를 끌어내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게 정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을 통한 해결이 아니라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부담이 쏠린다는 것은 정치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요즘 글로벌 선진국이 공통으로 겪는 일이다.


2019년부터 대한민국 가계의 GDP 대비 부채 비중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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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총재가 물가와 금리가 아닌 쓴소리를 내놓은 것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두뇌집단인 중앙은행이 장기 과제에는 눈감고 침묵한다는 게 납득이 되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또 세계국채지수(WGBI)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선진지수를 추종하는 해외 장기 투자자들도 앞으로 문제 해결 가능성 측면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한 곳을 눈여겨볼 여지가 있다. 한은총재의 발언은 사회적 논의에 참여해야 할 시민의 주의를 환기하고,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각계의 목소리를 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모든 말에는 결과가 따른다"고 했고, 이어 "모든 침묵에도 그렇다"라는 말을 남겼다. 현 상황에서 지적 리더들의 침묵은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취재보도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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