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해 가을 금융시장에 번졌던 들불이 다 꺼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불씨가 살아있었다. 이게 겨울을 견디고 다시 살아나 봄 들판도 홀랑 태우려고 한다. 지난해 9월 말 1,440원대였던 달러-원 환율은 지난달 1,220원까지 내렸다가 한 달 만에 1,313원, 같은 기간 국고채 3년물도 4.5%에서 3.1%까지 빠졌다가 현재 3.4%가 됐다. 물가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금융안정 이슈가 폭탄의 뇌관처럼 째깍째깍하고 있다. 물가는 확실히 상승세가 꺾였지만, 내려오는 속도가 느리다. 이대로라면 2%인 중앙은행의 물가 목표 달성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다.

한국 소비자물가 2023년말까지 3.5% 도달 전망
출처 : 연합인포맥스 8888 매크로 차트



죽었던 불씨가 살아난 데에는 난데없는 돌풍의 등장도 한몫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은 단 하루 만에 420억 달러(55조 원)의 예금이 인출되면서 초고속으로 이틀 만에 파산했다. 이를 이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폰 뱅크런'이나 'SNS 뱅크런'이라고 한다. 유동성 위험 소식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고, 고객들이 너도나도 스마트폰의 은행 앱으로 예금을 인출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은행은 기존에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미 국채 장기물을 엄청나게 쌓아두고 있었음에도 도산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동성이 좋다고 하는 미 국채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외화보유액에 주로 담는 자산이다. 안전자산으로 미 국채는 진짜 효용성이 있는 것일지, 미 국채를 많이 보유한 다른 중형 은행들도 나중에 위태할 수 있다는 것일지 의문이 생긴다.





최근 경기 침체 양상에서도 세상이 이전과 달라지고, 상황 전개가 예기치 않게 흘러가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 있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학의 금융경제학 교수는 이전에는 한꺼번에 위축되는 전형적인 경기 침체와 다르게 최근에는 순차침체(rolling recession)가 등장하는 이유를 정보의 유통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순차침체는 경제 다양한 부문이 교대로 침체를 겪는 현상을 말한다. 손 교수는 이 현상의 주된 이유는 정보의 확산 속도가 빠른 데다 연준이 통화정책 안내를 투명하게 운용하다 보니, 개인과 기업이 이를 예측하고 행동하면서 단순한 대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선제 대응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침체가 오기도 전에 먼저 인원 구조조정에 나섰다.





예전에는 맞던 게 지금은 틀린 상황이 됐다. 투자자들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전에 알았던 지식을 재점검하고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 또 지난해 한 차례 거쳐 갔던 들불은 전조였을 뿐이고 지금부터 마주할 현실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부터 지녀야겠다. 무엇보다 확실한 점은 이제 예전과 같은 저금리는 없다는 것이다. 레고랜드, 한전채, SVB나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발단의 공통점은 모두 고금리의 결과물이고, 앞으로 많은 것이 높아진 금리에 자신을 맞추느라 변할 것이다. 지난 겨울을 견뎌내면서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고 여겼지만 아직 아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정보의 유통 속도와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무지하게 빨라졌다는 점도 금융당국과 투자자 모두 중요 변수로 염두에 둬야 한다. 고물가와 금융 불안이 겹치는 고금리 시대의 진짜 맛을 느끼는 것은 지금부터다.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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