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91일물 기업어음(CP) 금리가 5개월여만에 4% 선을 깨고 내렸다. 자금 조달시장의 심리 상태를 잘 보여주는 CP 금리는 지난해 12월 5.5%까지 상승했다. 고점대비 낙폭은 1.5%포인트 정도다. 고물가 상황에 따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행진과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신용경색이 심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현재 CP 금리 수준이 보여주는 시장 심리는 진정됐다. 일부에서는 떨어지는 CP 금리를 보고 앞으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는 기대를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풀이도 내놓는다. 물가는 높지만 상승세가 꺾인 게 확실한 데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 도산 등을 감안하면 이제 중앙은행이 더 이상 금리를 인상하는 건 어렵다고 채권시장의 일부가 확신하고 있어서다.

지난 1년간 91일물 CP 금리(빨강)와 기준금리(파랑) 추이
출처 : 연합인포맥스 4511 최종호가 수익률



중앙은행이 금리를 안 올린다고 다시 자산시장에 유동성 잔치가 벌어질 것인가. '그렇다'는 대답을 시원하게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에 많이 빠진 CP 금리는 1년 전에 1.64%였다. 당시와 비교하면 CP 금리는 여전히 2%포인트 높은 상태다. 또 CP는 업종별, 신용도별 편차가 크다. 연합인포맥스의 'CP/전단채 통합 유통정보(4740 화면)'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A2' 신용등급을 가진 1년 만기 CP는 여전히 두 자릿수 금리에서 거래되고 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이 시중에 풀리면서 아파트 급매를 거둬들이는 효과를 내고 있지만 전체 부동산시장은 여전히 냉랭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고금리 시대를 맞아 상업용 부동산시장에 대한 재평가가 다시 이뤄지고, 은행 외에 제2금융권에서 이상 신호가 드러나는 것도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이번 주말은 금융시장 참가자들에게 코앞에 닥친 숙제다. 통상 월말, 분기 말, 연말 등은 자금이나 상품거래 만기가 몰려 있으며 그래서 자금이동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는 시기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분기말인 3월 말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이유다. 무엇보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급속 파산 이후 크레디트스위스(CS)에 이어 도이체방크까지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뢰 부족(Counter party Risk)'이 확산한 상태다. 또 전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보니 한쪽의 불안이 다른 쪽으로 쉽게 전염되고 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때 JP모건에 인수된 베어스턴스는 당시 거래기피자로 낙인찍히면서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에서 멀쩡한 미 국채를 담보로 제공하겠다는데도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다. 아무도 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A view of the Bear Stearns logo on the company's corporate headquarters in New York, New York, USA, on 20 December 2007. Bear Sterns, the United States' fifth-largest investment bank,announced on Thursday a large write-down in its mortgage portfolio which resulted in the quarterly losses in its 84-year history.EPA/JUSTIN LANE



현재 시장 심리 상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 주말 한 인터넷 은행이 선이자를 주는 예금상품을 전격 출시했는데 되려 유동성 상태에 대한 의심을 샀다. 분기말과 거래상대방에 대한 불안한 시선은 4월로 접어들 때까지 걷히기 힘들 것으로 보이고, 과도한 기준금리 인하 기대도 조심해야 할 리스크일 수 있다. 최근 은행발 사태의 소방수로 나선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명확한 두 갈래 접근법을 보였다. 스위스중앙은행(SNB)이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국지적 불안 이슈에 대해서는 정부와 재빠른 협력을 통해 해결했다. 필요시 유동성 공급에 적극 나서더라도 고물가를 잡기 위해 올린 기준금리는 건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전설적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만이 아니라 판매자와 구매자의 기대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말했다. 불안에 따른 쏠림을 차단할 선제적인 시장 기대 조성이 중요한 시기다.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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