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달 해외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채무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 올해부터 건전재정 기조로의 전환을 통해 적자 폭이 줄고 국가채무비율도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중장기적인 과제다. 빠른 고령화와 저출산, 인구감소 등이 몰고 올 충격은 미래 대한민국의 재정 상황을 전혀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게 한다. 세수 감소와 사회적 약자인 고령층을 위한 지출 증가 등이 뻔히 보이는데 그때 가서 재원을 끌어모으려고 하면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시간이 있는 지금부터 미리 대비하는 게 합리적이다.

올해 기획재정부는 미래세대의 과도한 채무상환 부담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두는 재정 준칙 법제화를 추진 중이지만, 여의도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채무 증가 속도가 빠르다고 진단하고, 준칙 도입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고물가, 고금리, 경기둔화 여건에서 한국 정부의 결심을 높게 평가했다. 이는 기축통화가 없어 외환을 조달해야 하는 데다 사람을 제외하면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국가 재정건전성이야말로 해외투자자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최후의 방어선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인기영합주의에 물든 정치가 재정과 통화정책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이런 장기계획 수립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다.

바로 직전 세계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확장 일변도의 재정과 통화정책이 필요했으며, 그 부작용으로 고물가를 맞이하게 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고강도 통화 긴축이 이어졌지만, 물가는 완전히 안 잡힌 상황이다. 결국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호주와 캐나다가 이달 인상에 다시 나섰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동결하더라도 다음 달에는 재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시장은 높게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의도에서 35조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제안이 등장했다. 고금리 피해를 지원하고 에너지 요금 부담을 경감해준다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세수 부족 탓에 추경은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이 선행돼야 하는 일이다. 이는 최근 안정된 시중금리 급등 위험을 키운다. 또 확장적 재정정책의 부활은 물가 상승도 다시 부채질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의 세계 경제규모 15위권 장기 전망



무엇보다 대규모 추경은 장기건전성 확보를 위한 결단에 나선 정부의 의지를 초기부터 무력화할 위험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K문화와 대규모 방산수출로 전 세계의 시선을 받는 뿌듯함도 느끼지만, 2050년에는 세계 15위권의 경제 규모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국력 정점론도 마주하고 있다. 독일의 한 시인은 '국가를 항상 지상의 지옥으로 만들어 온 것은 인간이 그것을 천국으로 만들려고 애쓴 결과였다'고 말했다. 재정·통화정책에 의존한 단기 성장을 계속 추구하는 것은 나라를 망가뜨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오는 28일 기재부는 중장기 재정 운용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 비전 2050을 발표한다. 재정 준칙의 법제화는 국채 금리를 안정시키고, 결국 국가채무의 이자 부담도 완화하는 효과를 내는 지름길이다. 미래세대를 위해 냉철하게 생각할 때다. (취재보도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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