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가상자산 시장 전망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밝다고 할 수 있다. 매크로 환경 변화와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이 그것이다. 이를 자산 가격 움직임의 원리, 네트워크 효과, 화폐 현상, 그리고 자산운용 관점에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자산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 효과와 내재 가치 상승으로 구성된다. 명목 경제 성장률이 인플레이션과 실질 성장률로 구성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인플레이션 효과란 자산 가격을 표기하는 회계 단위의 확장에 의한 가격 상승이다. 전 세계 주요 자산의 가치 측정에 사용되는 회계 단위는 미국 달러다. 따라서 미 달러 공급량이 늘어나면 동일한 조건에서 자산 가격은 상승한다. 자산 대비 미 달러의 상대적 가치 하락에 의한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완화 정책은 곧 미 달러의 공급 증가를 뜻하며 달러로 표시되는 모든 물가 상승에 시차를 두고 기여한다. 반면 내재 가치 상승은 회계 단위의 팽창 여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자체적인 가치의 상승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의 경우 현금 흐름이 내재 가치이다. 회사나 부동산의 미래 현금 흐름에 대한 기대가 증가하면 그 현금 흐름에 대한 권리인 주식, 채권, 부동산의 내재 가치는 증가한다.

현금 흐름이 없는 자산, 예를 들어 금은 내재 가치가 있을까. 금의 현재 시가총액은 14조 달러다. 금은 공업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금 내재 가치의 극히 일부다. 참고로 금보다 몇만 배 많은 양이 공업용으로 사용되는 구리의 시가총액은 금의 8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장이 부여한 금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통화자산으로서의 프리미엄이 그 답이다. 과거 5천년간 금의 주된 쓰임새는 통화 자산(monetary asset)이었다. 통화자산 프리미엄은 네트워크 효과로 결정된다. 네트워크 효과는 사용자 수의 증가에 비례해 가치가 상승한다는 메트칼프의 법칙을 따른다. 통화 자산이란 화폐로 사용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갖춘 자산이며 화폐의 3가지 기능이라고 불리는 가치 저장, 교환 매개, 회계 단위의 역할을 하나씩 차례대로 습득해 나가는 과정을 흔히 화폐 현상이라고 부른다. 화폐 현상은 수많은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사회학적 현상이며 19세기 말 영국 경제학자 스탠리 제번스가 그의 저서 '화폐와 교환 매커니즘'(Money & the Mechanism of Exchange)에서 정리한 이론이기도 하다.

자산 가격 상승의 원리, 네트워크 효과, 그리고 화폐 현상 이론을 금에 적용하면 금의 추가적인 내재 가치 상승 여지는 제한적이며 가격 움직임의 대부분은 인플레이션 효과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금은 수천 년간 인류 대다수가 가치저장 수단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완료하고 한동안 교환 매개 수단 및 회계 단위로까지 사용되다가 물리적 한계 때문에 과거 100년간 서서히 교환 매개 및 회계 단위의 기능을 상실했다. 정확히는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그 기능을 미국 달러에 완전히 넘겨주었다. 네트워크 효과로 인한 금의 내재 가치 상승은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금본위제로의 전환을 마무리한 20세기 초 정점을 찍었고 그 이후의 금 가격 상승은 모두 인플레이션 효과에 의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다르다. 생긴 지 15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자산이며 이제 겨우 화폐 현상의 첫 번째 단계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저변을 넓히기 시작했다. 5천년이라는 기간을 통해 네트워크 효과를 모두 소진한 금과 달리 비트코인은 거의 터치하지 않은 네트워크 효과의 업사이드가 남아있다. 몇몇 개발자들 사이에서 '디지털 소장품'처럼 거래되며 시작한 비트코인은 리테일 투자자들 주도로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지난 15년간 시총 1조 달러의 자산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성장해 온 비트코인에 2024년에는 엄청난 도약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비트코인 현물 ETF의 미국 증시 상장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큰 축을 형성하고 전 세계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는 미국 증시에 비트코인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현물 ETF가 상장한다는 것은 약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운영되는 제도권 자금이 비트코인에 장기 투자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 생김을 뜻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쓰임새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상장 직후 바로 비트코인 가격의 '떡상'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경부고속도로가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프라이지만 개통된 바로 다음 날부터 현재와 같은 교통량이 확보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물 ETF는 제도권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영구적인 경로를 확보했음을 뜻하며 그 효과는 수년에 거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혹자는 비트코인처럼 변동성이 높은 자산에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제도권 자금이 투자할지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자산운용의 기본적인 원칙과 선관의무에 충실한 자산운용사라면 자산의 변동성은 큰 문제가 아니다. 지난 40년간 자산운용업계를 지배한 원칙인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를 뿐이다.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르면 투자 포트폴리오 대비 낮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자산을 편입할수록 리스크는 높이지 않으면서 기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해리 마코비츠는 이를 두고 "자산 다각화만이 유일하게 리스크 없이 수익률을 올리는 방법(diversification is the only free lunch)"이라고 표현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현물 ETF라는 유용한 툴을 통해 공짜 점심이 제공됐는데 이를 취하지 않는 것은 타인의 자산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로서의 선관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직무 유기에 가깝다. 이것이 전 세계 자산운용업계의 귀감인 예일대를 비롯한 미국 명문대 기금이 5년 전부터 가상자산에 투자해 온 이유다. 예일대 기금은 장기성 기관투자자의 트렌드를 선도해왔다. 2000년대 초 헤지펀드는 투기성이 강한 위험한 펀드라는 인식이 팽배할 때 사회적 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라 헤지펀드의 투자를 시작한 곳이 미국 예일대의 기금이다. 당시에 보수적인 대학 기금의 헤지펀드 투자는 가히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지금은 한국의 국민연금도 헤지펀드에 투자한다.

종합하면 2024년은 자산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인플레이션 효과와 내재 가치 상승의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가상자산 시장에 우호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리스크도 존재한다. 경기 과열이 재발생하여 연준이 다시 매파적 기조로 전환하거나 또는 아주 작은 확률이지만 현물 ETF 승인이 반려될 경우다. 하지만 연준은 최근 기준금리 동결 발표 이후 통화 긴축 종료 및 2024년 하반기 통화 완화를 암시하였다. 이를 반영하여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두 달 사이 5%에서 4% 이하로 하락하였다. 위험자산 가격에 유리한 매크로 순풍과 더불어 비트코인이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저변을 영구적,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현물 ETF의 상장은 비트코인 가격이 달러 대비 상대적 가치 상승은 물론이고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실질적 가치의 상승이 함께 발생할 것임을 뜻한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이더리움 등 다른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한 현물 ETF 상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져서 그 여파는 시장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한국시간 2024년 1월 9일 오전 8시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정석문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리서치센터장)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10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