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지난해 국내 대형 증권사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100%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자본주의의 중심인 증권업계에서 주주를 대리하는 이사회가 독립적이지 못한 모습이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3년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미래에셋·NH투자·삼성·하나·키움·대신증권 등 6곳의 사외이사 30명가량이 한 해 10여 차례 열리는 이사회의 중요 의결사항에 대해 단 하나의 반대표도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까지의 이사회 기록을 공시한 한국투자·신한투자증권과 2분기까지의 기록을 공개한 KB·메리츠증권의 사외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10대 증권사의 사외이사들이 찬성 의견만 수백 차례 낸 셈이다.

이사회 내 위원회에서는 소수의 반대표가 나왔다.

한국투자증권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조영태·김태원 이사가 작년 2월 회의에서 '태영건설 자금보충부 유동화증권 기초 지급보증 승인의 건'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김태원 이사는 '코오롱글로벌 자금보충부 대전 선화동 주상복합 개발사업 브릿지대출 리파이낸싱 지급보증 및 셀다운 승인의 건'에도 반대했다. 다만 두 이사의 반대에도 두 안건은 가결됐다.

하나증권의 평가보상위원회에서는 양재혁·장정주·성민섭 이사가 '2023년 금융투자업무 담당자 성과보상 기준안 승인'을 반대하며 부결시켰다.

사외이사가 거의 모든 안건에 찬성하는 것과 관련해 명재엽 KCGI자산운용 팀장은 "이사회가 대부분의 안건을 미리 공유하기에 반대가 잘 나오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의 사외이사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주주가 개별 이사의 잘못된 결정에 소송을 걸기에 이사 스스로 불합리한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한다는 것이다.

명 팀장은 "미국 사외이사가 도덕적으로 우월해서 반대를 많이 하는 게 아니다"라며 "법적인 책임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사외이사가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500대 주요 기업 중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에 전부 찬성한 기업이 90% 이상이다. 지난 8일 기준으로 주주총회소집공고 보고서를 제출한 181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조사 대상 기업의 사외이사는 전체 안건에 대해서 99.3% 찬성했다.

전문가들은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국회에선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상법 제382조 3에서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를 '이사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로 고치는 게 골자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법 자체가 소액주주의 이익 보호에 미흡하다"며 "상법 개정안 통과야말로 지배구조 문제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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