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연합인포맥스) 백웅기 기자 = 신라 천 년의 고도 경주는 곳곳에 문화유산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기피시설도 있다. 바로 원자력 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다.

지난 26일 찾은 경주 방폐장과 월성 원전 인근 지역은 우리 사회 원전과 관련한 갈등 양상이 집약된 모습이었다. 기피시설 유치를 이유로 지역지원사업 강화를 외치는 주민들과 탈원전을 주장하는 환경단체 등의 현수막이 동네 곳곳에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강렬한 원색으로 적힌 현수막들을 제외하곤 경주 방폐장으로 이동하는 길은 여느 작은 시골길에 비해 잘 정돈된 듯했다. 약 200만㎡ 면적의 방폐장 겉모습에 대한 첫인상도 다르지 않았다. 녹지공간이 많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이 지하 130m에 있어 흉물스러움을 감춘 덕분이다.

세계최대 규모의 방폐장이라는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실감하지 못했지만, 동굴 밑 사일로(폐기물 저장공간)의 규모를 체험하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현재 1단계 공사를 마친 20층 아파트 높이 정도의 사일로를 밑으로 내려보니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약 10만 드럼(드럼 당 200ℓ)의 폐기물을 수용할 총 6기의 사일로는 사용전 검사를 마치고 최종 서류심사 중으로, 서울 공릉동 방사성 아스팔트 등 앞서 경주 방폐장이 인수해 임시저장공간에 보관 중인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앞두고 있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에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는 "지반가속도 0.2g, 리히터규모 6.5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라며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이 와서 방폐장 시설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지하 깊은 곳에서 뭘 하려고 그러느냐'라고 의문을 표시할 정도"라고 말했다.







방폐장을 둘러본 뒤엔 현재 가동을 멈추고 계속운전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월성원전 1호기를 찾았다.

시설용량 67만8천㎾의 중수로형 원전 월성1호기는 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2012년 운영허가기간을 마친 뒤로 출력현황판 숫자가 줄곧 '0'을 그리는 상황이다.

세계원전 가운데 가동률 1위를 4차례나 차지할 정도로 제 구실을 다해왔지만, 높은 가동률은 수명을 단축시켰다. 운영 연한에 채 못 미치는 2009년 원자로에 해당하는 압력관 380개를 전면 교체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전 관계자는 "가동률이 높다는 건 그만큼 기술력이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안전에 문제가 있어서 교체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길까봐 사전에 교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 자동차로 보면 엔진에 해당하는 원자로를 교체한 덕분에 현재 효율성 등은 월성 2~4호기보다 낫지만 가동연수가 많아 움직이지 못하는 건 역설적이다.

월성원전 관계자는 "운영허가기간은 안전성과 성능기준을 만족하며 운전가능한 최소 기간으로 가동한 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하지 않은 건 아니다"라며 "기존 원전을 계속 운전하는 건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했다. 원전을 새로 짓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존 원전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 사고가 나면 씻을 수 없는 피해가 우려되는 원전인 만큼 안전성 확보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보편적 여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전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주제어실에서 분주하게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조종사들이나, 언뜻 봐도 임신 후기임이 드러나는 여직원이 현장 인근에서 일하는 모습은 원전 계속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날것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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