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재영 기자 = LG실트론 지분 49%의 향방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최초로 인수금융 디폴트를 낸 보고펀드가 보유 중인 지분 29.4%를 팔려는 채권단과 이를 사려는 오릭스, 최대주주로서의 '힘'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LG그룹의 입장 차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LG실트론의 3대주주인 KTB프라이빗에쿼티(KTB PE)가 갖고 있는 19.6%의 지분 처리 문제까지 겹치면서 협상은 꼬여가고 있다.

LG와 오릭스, 채권단이 LG실트론 지분을 갖고 서로 '핑퐁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는 최근 보고펀드 보유 지분의 처분권을 갖고 있는 우리은행 등 채권단을 통해 오릭스가 보고펀드 지분 인수에 더해 KTB PE의 지분까지 확보해야 '주주간 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오릭스는 보고펀드 보유 지분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LG에 3년 이내 IPO(기업공개), 이사진 파견 등의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주주간 계약 체결을 요구해 왔다.

LG는 그간 오릭스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검토했고, 양측 간 협상은 막바지에 다다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LG가 KTB PE의 지분까지 인수해 확실한 2대 주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지 않으면 주주간 계약은 어렵다는 입장을 오릭스에 전달하면서 양측간 협상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됐다.

LG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보고펀드는 LG실트론의 IPO 무산 책임을 두고 구본무 LG 회장 등 그룹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어 LG로서는 사모펀드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다.

LG는 특히 자신들을 제외한 주요 주주에 사모펀드 2곳이 참여하는 데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간 계약을 맺더라도 단일 '비지배주주'와 하겠다는 것이다.

오릭스는 보고펀드의 보유 지분 인수 협상과는 별개로 KTB PE 보유 지분을 매입하는 것도 검토 중이었다.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보고펀드 보유 지분을 우선적으로 인수한 뒤 KTB PE와 추가 협상을 통해 지분 49%(보고펀드 29.4%+ KTB PE 19.6%) 모두를 인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KTB PE의 인수금융 만기가 연말까지 기한이 남아 있는 만큼 지분을 매입하기까지 급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올 연말이면 인수금융 만기에 밀려 조건이 불리해지는 KTB PE 지분까지 당장 일괄 매입할 필요성은 없기 때문이다.

오릭스 고위 관계자는 "KTB PE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굳이 그 지분까지 모두 살 필요는 없다"면서 "LG와 오릭스, KTB PE가 함께 LG실트론을 경영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한 것 아니겠느나"고 말했다.

채권단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LG와 오릭스 간 협상에서 중재자로 나서 지분 매각 성사를 기대해 왔으나 돌출변수 발생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보고펀드와 KTB PE는 지난 2007년 컨소시엄을 구성해 동부그룹으로부터 LG실트론 지분 49%를 약 7천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보고펀드는 LG실트론 실적 악화 등으로 인수 당시 금융권에서 끌어온 인수금융 만기를 연장하지 못해 디폴트를 냈고 채권단에 보유 지분 처분권을 넘겼다.

KTB PE는 NH농협은행과 대구은행 등 채권단과의 협의를 통해 올 연말까지 인수금융 만기를 연장한 상태다.

jy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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