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영업비밀 침해와 특허를 놓고 소송을 진행 중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LG화학은 배터리 특허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이 증거 인멸을 했다며 ITC에 제재 요청을 했고, SK이노베이션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라면서 LG화학이 왜곡·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업계에서는 다음 달 초 ITC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결정이 나오기 전에 최대한 자사에 유리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 영업비밀 침해 소송 이어 특허소송 진실공방

7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일에 이어 6일 입장문을 또 내고 SK이노베이션의 '994 특허'가 LG화학의 선행기술인지 아닌지에 대해 날 선 공방을 펼쳤다.

994 특허는 SK이노베이션이 2015년 출원한 배터리 기술 관련 특허로,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9월 자사의 994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에 LG화학을 제소했다.

이에 대해 LG화학은 994 특허가 LG화학의 선행 기술을 활용한 것이라며, 역으로 ITC에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제재를 요청했다.

2013년부터 크라이슬러 퍼시피카에 판매된 LG화학 A7 배터리가 해당 기술을 탑재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은 또 지난 8월 SK이노베이션이 증거인멸을 했다며 ITC에 제재를 요청했다.

994 특허 발명자가 LG화학의 선행기술 세부 정보가 담긴 문서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논의한 프레젠테이션 문서도 발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올해 3월까지도 증거인멸을 했고, 이에 따라 제재를 요청한다는 것이 LG화학의 주장이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경쟁사 특허 개발을 모니터링하고 있고, 선행 기술이 있었다면 2015년 당시 994 특허 등록 자체가 안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LG화학이 증거로 인용한 문서들에 대해서는 "특허 관련 정보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며 "문서 제목만 제시해 뭔가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994 특허 발명자가 LG에서 이직한 사람은 맞지만, LG화학이 관련 제품을 출시한 2013년보다 5년 전인 2008년 이직했기 때문에 시간 순서상 억지 주장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울러 LG가 삭제된 후 복원됐다고 주장하는 파일도 보존 중이었고 시스템상의 임시 파일이 자동으로 삭제된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 ITC 영업비밀 침해 최종 결정 앞두고 막판 샅바싸움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ITC의 영업비밀 침해 최종결정을 앞두고 양측이 막판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ITC에서 영업비밀 침해와 특허를 놓고 2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중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증거인멸을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이 조기 패소 판결을 받았고, 다음 달 5일(미국시간) 최종 결정이 나온다.

ITC는 올해 2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혐의가 명백하다며 조기패소를 결정했으며 이에 SK이노베이션은 ITC에 '예비결정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후 지난 4월 ITC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 재검토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이는 통상적인 절차로2010년부터 2018까지 진행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예비결정 결과가 뒤집어진 사례는 없었다.

상황이 불리해진 SK이노베이션이 그 전에 소송을 끝내려면 LG와 배상금 합의에 성공해야 한다.

최종 패소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미국으로 배터리 부품·소재에 대한 수출이 금지돼 앞으로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 가동이 중단될 공산이 크다.

SK이노베이션은 포드의 전기트럭 F시리즈와 폭스바겐의 미국 내 생산 전기차 배터리의 대부분을 조지아주 공장에서 생산, 조달할 예정이다.

국내 또는 인근 국가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할 수도 없다.

이 경우 앞서 계약한 수주 약속도 파기되면서 LG에 대한 금전적 배상은 물론 SK이노베이션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도 양사의 공방이 더욱 격화하는 것은 배상금을 둘러싼 입장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양사의 협상을 위해 제시하는 금액은 LG화학이 수조원대, SK이노베이션은 수백~천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상반기 총 2조2천14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수조 원의 배상금을 지불하기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이 합의를 포기하고 ITC 결정은 물론 미국 연방법원의 결정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ITC 최종 결정이 나오면 LG화학이 지난해 4월 미 연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최종 재판이 열리고 피해액과 배상금액이 확정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내 일자리와 전기차 산업 보호를 위해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고, ITC 최종 결정 이후에도 SK이노베이션이 공탁금을 걸고 수입 금지까지 60일의 유예기간을 벌 수도 있어 사태 해결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이같은 주장을 배격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이 미국 현지에서 한국인 근로자를 불법으로 고용했다며 ITC에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요청서를 보냈다.

전문가들은 일단 ITC의 최종 결정까지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만큼 양측이 물밑에서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실무진의 합의가 여의치 않으면 양 그룹 최고경영자(CEO)나 총수가 나서면서 막판 극적 타결이 이뤄질 수 있다"며 "배상금을 일시에 지급하기보다 러닝개런티(수익배당금) 형태로 SK이노베이션이 관련 기술이 채택된 제품을 판매하는 데 연동해서 LG화학에 배상금을 지불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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