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향년 78세(종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향년 78세(종합)
  • 이미란 기자
  • 승인 2020.10.2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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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강남구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만이다.

삼성그룹은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이에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니 양해해달라"고 밝혔다.

고인은 2014년 5월 10일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자택근처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됐으며, 다음 날인 11일 새벽 막힌 심혈관을 넓혀주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뇌와 장기의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저체온 치료를 받고 진정 치료를 계속하다 심폐기능이 정상을 되찾으면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입원한 지 보름 만에 혼수상태에서 회복했다.

심장기능을 포함한 신체기능은 정상을 회복해 입원 6개월 무렵부터 안정적인 상태로 하루 15∼19시간 깨어 있으면서 휠체어 운동을 포함한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까지 자가호흡을 하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6년 5개월 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고인은 하이테크 산업 진출만이 살길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삼성 반도체 신화'를 잉태시켰다.

이병철 선대 회장도 처음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1982년 반도체연구소 설립, 이듬해 반도체 사업 진출 공식 선언 등을 통해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 열정을 지원함으로써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시장을 평정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했다.

이 회장은 애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부친의 눈 밖에 나면서 후계자로 낙점됐다.

1987년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1993년에 밝힌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신경영 시대를 열었다.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경영진을 소집하고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며 고강도 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500억원 어치의 불량품을 소각하는 이벤트로 질(質) 위주의 신경영을 주창하고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 모든 것을 바꾸라'는 주문으로 혁신을 강조하는 데서 나아가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으로 새로운 시대상에 맞는 자기계발을 임직원들에게 요구했다.

이 선언 이듬해인 1994년 첫 휴대전화로 '국민 휴대폰'을 탄생시켜 '애니콜 신화'를 쓰기 시작했고, 스마트폰 갤럭시 성공의 기반이 됐다.

반도체 역시 1989년까지는 D램 시장에서 일본 도시바와 NEC,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이어 4위에 머물렀지만,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램을 개발하고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이후 삼성전자는 D램 세계시장에서 40%가 넘는 점유율로 28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2006년에는 글로벌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고, 스마트폰시장에서도 애플을 따라잡고 1위로 성장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내면서 삼성은 이 회장의 취임 당시 1조원이던 시가총액이 390조원대로 40배나 커졌다.

이 회장은 한국 재계의 거목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와 각종 수사 등의 시련도 겪었다.

1997년 IMF 당시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만 해도 3만여명이 직장을 떠나야 했고, 젊은 시절부터 이 회장이 '필생의 도전'으로 생각하고 1994년 창업한 승용차 사업을 접어야 했다.

삼성자동차는 법정 관리 이후 2000년 르노에 인수됐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단독사면된 이 회장은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했고 조직 재정비와 삼성의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mr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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