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무자비한 증세를 바탕으로 퍼주기 무상복지를 펼치는 좌파 혹은 사회주의 정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내놓은 정책에 대한 '우리식 관전평'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하고 있는 재정 부양책의 얼개는 유럽식 복지국가를 향하고 있다. 양극화로 너무 가난해진 미국의 하위 계층을 구제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주류를 차지했던 신자유주의의 사실상 폐기를 선언하는 등 경제사상사의 큰 물꼬를 바꿀 정도다. 한국적 정치 경제적 지평이나 언론환경이었다면 '퍼주기' 혹은 '좌파'라는 비난이 벌써 여러번 지적되고도 남음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 정권은 절박하다. 더는 가난한 미국인들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결기까지 느껴진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계기로 드러난 미국의 민낯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다는 점을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지도자들이 확인하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인구의 12%인 4천만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됐다. 이 가운데 1천850만명은 절대빈곤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아동의 17.5%에 해당하는 1천300만명의 어린이들이 가난을 경험하고 있다.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상대적 빈곤층 비중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악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아동 가운데 20%는 정부의 보조금 지급에도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안전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이다. 북유럽의 복지국가인 핀란드는 이 비중이 3.6%에 불과하다.

미국은 또 주거복지가 터무니없이 약한 탓에 가계의 빈곤율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간 3만달러 이하 소득의 미국인 대다수가 절반 이상의 소득을 주거비용에 쓰는 것으로 집계됐다. 음식료비, 교통비, 헬스케어에 지출할 여유가 없는 게 너무 당연하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여파 속에 미국의 세입자 5명 중 1명이 집세를 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올해 초에 미국에서 집세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가 1천 가구를 넘어섰을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미국 전체 세입자의 18%가량으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집을 압류당한 700가구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치솟는 주거비용은 소득 양극화의 '핵심 추동 요인(driving force)'으로 지목됐다. 주거비용이 치솟으면 빈곤층의 집중화를 초래하고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도 그만큼 약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자본주의 진영의 모범생이었던 미국이 이처럼 가난해진 이유는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탓으로 풀이됐다.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미국 40대 대통령이 주창한 이후 자본주의 진영의 주요 경제정책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이른바 트리클다운 효과(Trickle-down effect:낙수효과)를 주창하며 상위 부유층의 소득 증대를 위한 부자 감세에 주력했다.

지난 40년간 이어져 온 신자유주의의 결과는 참담할 정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경제를 떠받쳤던 중산층의 몰락이 지표로 확인되고 있어서다. 상위 부유층의 증대된 소득이 저소득에 흘려내려 갈 것이라는 부의 이전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인 트리클다운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 중산층의 몰락은 극단적인 소득양극화로 이어졌다. 가브리엘 주크만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캠퍼스 교수가 최근 발표한 '부의 불평등(Global Wealth Inequality)'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0.00025%인 상위 400명의 부는 1980년대 초보다 3배 증가했다. 하위 60%를 차지하는 1억5천만명의 부는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7년 5.7%에서 2014년에는 2.1%로 줄었다. 주크만 교수는 상위 400명이 3달러를 소유하고 있다면, 하위 1억5천만명은 다 합쳐야 2달러를 소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400명이 1억5천만명이 합친 것보다 50%나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도 출마했던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저서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This Fight Is Our Fight)'를 통해서 "트리클다운은 거짓말이다"고 강조했다. 트리클다운 효과는 거대기업과 백만장자들이 더 많은 돈을 갖게 해 줄 뿐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워런 의원은 '극부유층 과세법안'(Ultra-Millionaire Tax Act:이하 부유세)을 발의하는 등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의 증세 추진의 핵심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저서를 통해 미국의 중위계층은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정부의 식료품 구매권에 기대야 할 정도로 시장소득의 혜택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5년 동안 트리클다운의 혜택을 단 1%도 받지 못했다는 의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취임 이후 첫 의회 연설을 통해 1조8천억달러(약 2천5조원) 규모의 지출계획인 '미국 가족 계획'을 공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원도 '부자증세'를 통해 조달할 방침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가족 계획'은 10여년간 교육과 보육에 1조 달러를 지출하고 중·저소득층 가구에 8천억 달러의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등 모두 1조8천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500만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3~4세 아동 유치원 무상교육, 커뮤니티 칼리지 2년간 무상 교육, 보육료 지원, 유급 육아휴직 확대, 건강보험료 인하, 아동 세액공제 확대 방안이 포함된다.

재원 조달 방안을 보면 부자들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한 증세가 뒤따를 전망이다. 우선 자본이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20%에서 39.6%로 배 수준으로 인상하는 방안이 추진될 전망이다. 소득 상위 1%가 적용받는 연방소득세 최고 과세 구간 세율도 37%에서 39.6%로 올리는 방안이 마련됐다. 법인세도 현행 21%에서 28% 수준으로 대폭 올리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저주에 가까운 비난 대신 증세 효과에 따른 경제적 파장에 대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경제적 논거를 갖춘 품격있는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중산층 몰락에도 자본주의 본진으로 굳게 서 있는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배수연 특파원)

neo@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8시 45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