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예원 기자 = "금융회사들과의 전쟁을 지금부터 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융권 호랑이'로 불렸던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018년 취임한 지 약 두 달 만에 꺼내든 말이다. 그로부터 3년. 윤 전 원장은 '소비자 보호'라는 가치를 둘러싸고 금융회사들과 그야말로 '전쟁'을 치렀다.

윤석헌 전 원장은 취임한 해 즉시연금 과소지급 논란과 관련해 생명보험사와 갈등을 빚었다. 보험약관을 애매하게 작성한 보험사의 책임이란 게 그의 중론이었다.

그는 지난해 퇴임한 원승연 전 부원장의 주도하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가 아니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서 분식회계로 결론이 났다. 현재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증선위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10여년 만에 꺼내든 '키코 재조사' 카드도 윤 전 원장의 대표적인 성과다. 학자 시절부터 키코 재조사를 요구했던 윤 전 원장 휘하에서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판매은행들에 조정 권고를 내렸다. 이에 우리은행이 분조위 조정안을 수용했고, 신한·씨티·대구은행도 피해기업에 대해 자율보상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전 원장의 '호랑이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났던 사안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를 시작으로 한 사모펀드 사태다.

당시 내부통제 등에 대해 최고경영자(CEO)에 책임을 묻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에도 금감원은 금융회사 CEO에게 철퇴를 내렸다. 당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금감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아들었다.

이런 기조는 라임 펀드와 관련한 제재까지도 이어졌다.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에게는 문책경고를, 진옥동 신한은행장에게는 주의적 경고를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 탓에 금감원 안팎에서의 흔들림은 피하지 못했다.

강경 제재를 내린 사모펀드 사태를 미리 막지 못한 데 대한 금감원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윤 전 원장은 지난해 정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관련한 감독·검사를 담당하는 금감원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임기 마지막에 들어서는 금감원 노동조합과의 갈등까지 불거졌다. 금감원 노조는 올해 2월 정기인사를 문제 삼으며 윤 전 원장을 강하게 규탄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이에 직원들이 불만을 강하게 표시하자 당시 금감원 부원장들은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해당 사태가 사실 여부나 옳고 그름을 떠나 금감원 내부에서 필요한 결속을 흩트려놓은 것은 있다"며 "윤 전 원장도 당시 여러모로 당황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임사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마음의 빚을 미처 다 갚지 못하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언급한 것도 막판 금감원의 내부분위기와 무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후련하다"

윤 전 원장은 마지막으로 금감원을 떠나는 길에 이렇게 짧은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1096일 만에 고독한 전쟁을 내려놓고 떠났다. 소회를 말하는 모습은 밝았다. 그는 이임식 현장에서 직원들이 준 감사패를 들어 올리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어쩌면 이 전장(戰場)을 가장 떠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아니었을까 싶다.

yw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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