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의 2020년도 성과는 시가평가 기준 9.58%로 전년도 11.34% 수익률에 이어 우수한 성과를 나타냈다. 평가수익만 72조1천437억원으로 가입자가 같은 기간 납부한 보험료 51조2천172억원을 크게 초과하였다. 가입자가 두 배 이상의 보험료를 낸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둔 것과 같다.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이 2020년도와 같은 절대수익률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만 있다면 기금소진은 상당 기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기금운용을 잘하면 가능할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도 하게 한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높다고 해도 많은 부문은 소위 '운'에 좌우된다. 시장이 좋으니까 함께 좋아진 것이다. 2019년, 2020년 기금운용 성과 역시 코로나 위기로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주요 국가들의 신속한 재정투입으로 금융시장이 상당한 상승세를 실현하여 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아무리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는 펀드매니저라 하여도 전체 주식종목을 보유한 상태에서 자본시장 전체가 폭락하는데 수익을 낼 수 없다. 국민연금과 같은 거대 기금의 경우 특히 그렇다.

해당 기간 시장이 좋았는지 나빴는지가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정 부문의 성과가 마이너스가 되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운용을 못 했다고 평가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위험관리를 잘한 것으로 칭찬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코스피 지수로 대표되는 국내 주식시장이 연초 대비 30% 올랐는데 기금운용 주식 부문에서 20%의 수익률을 낸 것과 반대로 코스피가 -20%로 하락하였을 때 -10%의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면, 실제 어느 운용이 더 우수한 것인지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대해 그 진정한 평가는 시장이 전체적으로 성장한 것에 비해 기금운용에서는 이를 초과하여 얼마만큼 더 수익을 내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0.21%를 보인 적도 있었고, 가깝게는 2018년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0.89%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8년 당시 국내 주식시장은 -17.8%로 하락하였으며, 2008년의 경우는 -40.73% 폭락할 정도로 안 좋은 상황이었기에 당시 국민연금의 성과는 나름대로 위험관리를 잘한 우수한 성과라는 평가도 있다. 운용인력의 능력만으로 절대수익률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국민연금이 거둔 절대수익률을 기준으로 기금운용의 능력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언론에서도 마치 우수한 펀드매니저를 채용하면 향후 시장의 움직임과 별개로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기대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금본부의 역량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2019년이나 2020년 거둔 절대 성과는 기금운용 담당자들의 노력으로 달성한 성적이긴 하였으나, 이에 앞서 시장이 크게 성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범선이라도 바람에 따라 속도가 정해진다.

물론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2020년의 경우 운용성과가 시장의 성과에 비해 전체적으로 초과 수익률을 달성하였다는 점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주요 투자자산별 성과가 시장에 비해 초과 성과를 나타내어 단순히 시장지수에 투자하였을 때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인 것이다. 전략적 자산배분에서 마련된 시장 수익률 기준을 초과할 수 있도록 운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기금의 규모로 투자는 대부분 시장과 아주 유사한 수준의 수익률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2020년의 기금운용 성과는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성과다. 국민연금기금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실제 운용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으로 상정한 비교 대상을 벤치마크(Benchmark)라 한다. 벤치마크는 이렇게 운용성과와 시장과의 비교를 위한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향후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전망하고 적절한 수준의 투자 비중을 설정하기 위한 자산배분의 기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크게 국내주식, 국내채권, 해외주식, 해외채권, 대체투자를 위한 기본 벤치마크를 가지고 있어 이를 기준으로 중기 자산배분안을 마련한다. 기금운용본부는 이를 기준으로 자산별 세부 벤치마크를 만들고 개별 운용역들은 이를 초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2020년은 이 부문에서 모두 초과성과를 나타내면서 그들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절대수익률만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잘하였는지, 못하였는지를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물론 2020년의 경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시장의 상승률을 모두 초과한 수익률을 거둠으로써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는 점은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다.

국민연금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의 상승에만 기대하여 기우제를 지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 전체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의 입장에서 국내총생산이 증가하여 시장 전체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나, 보험료 납부자를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 혹은 투자 대상의 가치를 높이는 방안 등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수한 운용역만 있으면 절대 수익률이 높아져 기금소진 시점이 연장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젠 그만하자. (원종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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