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한국의 국격이 많이 높아졌다고 한다. 실제로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외국인들이 이제는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난리다. 한국은 세계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러한 높은 위상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그 경제력이라는 것은 전후(戰後)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경제 기반을 다시 일으켜 세운 국민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 간 비교를 하기 위해 세계은행 통계를 가지고 분석해 보면, 1962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20달러로 세계 54위에 불과하였다. 이는 당시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 230달러의 약 절반 정도며, 세계 평균(485달러)의 25% 수준,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천466달러)의 8%, 미국(3천280달러)의 4%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은 말 그대로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2022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천990달러로 미국(7만6천370달러)의 47% 수준, OECD 평균(4만4천886달러)의 80% 수준에 달하며 물론 세계 평균 소득(1만2천804달러)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특히, 60년 전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던 필리핀의 현재 국민소득인 3천950달러 대비 9배가 넘는 소득 수준에 이르고 있다. 또한 경제 전체적으로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962년 국가 순위 36위로 세계 GDP의 0.2%에 불과하였으나, 2022년 현재 13위로 세계 GDP의 1.7%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 강국이 되었다.

이러한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경제의 비약적 발전 속에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우선 1인당 국민소득이 아직도 선진국 그룹인 OECD 평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이 쫓아왔지만 2022년 세계 순위로 본다면 28위의 소득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경제 전체의 사이즈인 GDP 규모로 보면 2022년 한국의 세계 순위는 2020년 10위보다도 하락한 13위이며, 2022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로 2018년(2.0%)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 중이다. 그동안의 기적적인 성과가 이제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일본은 많이 쪼그라들었지만 지난 1994년 일본의 GDP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9%에 달했었던 적이 있다. 우리는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져 본 적이 아직 없다. 세계 경제 비중 2%도 안 되는 경제 규모, 그리고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 수준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목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한계성의 근본에는 너무나 빨리 감속하는 성장 속도에 있다. 즉 성장잠재력 고갈 또는 잠재성장률의 하락이 그것이다. 한국 경제는 대외 메가 쇼크(거대 충격) 이후 예외 없이 잠재성장률이 급락하였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잠재성장률은 외환위기 이전(1991~1997년) 연평균 7.3%에서 외환위기 이후(1998~2008년)에 5.1%로 하락하였다. 한편, 금융위기 이후(2009~2019년)에는 다시 3.0%로 하락하였으며, 이번 코로나 위기 이후(2020~2028년)에는 2.2%에 그칠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연구 기관에서는 향후 잠재성장률을 1%대로 예측하기도 한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잠재성장률 급락의 주된 원인은 양적 생산요소인 자본투자와 생산가능인구의 위축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보완할 질적인 생산요소인 기술혁신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기술혁신을 대변하는 TFP(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성장력의 하락을 방어하는 데 도움은 되었지만 아주 큰 기여를 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즉, 기술혁신은 충분한 양적 생산요소와 결합되어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충분한 투자가 뒷받침되고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충분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는 힘이다. 그래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한국 경제의 해법이 오로지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 확보에 있다는 솔루션을 제안하는 연구자들의 주장에 반대한다. 기술이 산업화가 되어야 비로소 경제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잠재성장률을 높일 방법으로 흔히 거론되는 또 다른 주장은 앞으로 도약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수출 주도 경제 성장 전략을 버리고 내수 중심 경제 성장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의 저변에는 미국 경제가 튼튼한 원인이 내수 시장에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 미국의 내수 시장 규모는 막대하다. 미국 민간 소비는 미국 전체 GDP의 70% 내외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의 경제는 내수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러한 대규모의 내수 시장이 있다면 세계 경제가 좋든 나쁘든 굴곡 없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경제도 수출 주도의 성장 구조에서 내수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고, 그래서 이제는 내수 중심으로 경제를 끌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실제 우리나라 전체 GDP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명목 기준으로 GDP 대비 민간 소비의 비중은 1980년 62.7%에서 1990년 50.2%, 그리고 2015년 이후에는 5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무게중심은 옮겨지지 않았다. 즉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말인데, 이것은 한국 경제가 최근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였지만, 그나마 이 정도 성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수출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시장이 있어야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고, 만약 그 시장을 내수 시장으로 한정한다면 한국 경제는 과잉 생산력을 가지게 되고 결국은 내수 시장 규모에 맞는 구조조정을 통해 초저성장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요약하면 경제 강국들의 경제 규모나 국민소득에 근접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지금의 성장 전략이 유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잘나가던 수출 강국들이 이러저러한 장벽에 막혀 내수 중심의 성장 전략으로 선회했을 때 국운이 흔들리는 사례는 많다. 일본은 수출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내수 중심으로 돌아섰지만, 그것이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이 되었다. 중국은 서방 국가들의 견제와 내부의 사회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쌍순환'이라는 거창한 전략을 밀고 나갔지만, 부동산 버블로 인해 지금 일본의 장기불황 사례를 따라가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수출만이 먹고 살길이란 판단은 옳았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한국 경제가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경제의 기초 체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본 등의 양적 생산요소 확충이 시급하다. 그리고 동시에 기술·인적자본 등의 질적 생산요소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의 외부 충격에 대한 내성을 강화하기 위해 내수 시장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내수 시장을 아무리 키워도 해외 시장 규모와는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해외에 팔 수 있는 물건을 제조업 제품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최근 부상하는 K-콘텐츠 등의 고부가 서비스제품으로도 수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글로벌 주도권 되찾기 전략으로 글로벌 산업 지형이 급변하고 있는 점에 대응하여, 지는 산업과 뜨는 산업을 명확히 가려내고 우리 산업 구조의 무게중심을 신속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즉 앞으로 팔 수 없는 물건과 팔 수 있는 물건을 가려내야 한다는 말이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국격은 있을 수가 없다. 지금의 한류도 경제력이 바탕이 되지 못한다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한국 경제가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했지만 아직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고는 할 수 없다. 60년 동안의 우리의 훌륭한 성과는 과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그려보는 미래의 한국 경제를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행동에 옮겨야만 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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