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규제가 금융회사와 가계를 옥죄고 있다. 총액 증가율 한도에 걸린 금융회사는 신규대출을 전면 중단했고 한도가 남아있는 금융회사들로 수요가 몰리면서 연쇄 대출 중단이 우려되고 있다. 이른바 신용경색(credit crunch)이다. 전세자금과 아파트분양 중도금 등을 마련해야 하는 가계는 갑작스러운 가계대출 규제로 자금 마련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부작용이 분명한 상황에서 가계대출 규제는 필요한 것인가. 논거는 이렇다. 가계대출은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 채무불이행 위험과 금융안정을 위협할 만큼 커졌다. 국내외 통화정책이 정상화되며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 그 이전에 가계대출의 증가세를 진정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올해 증가율은 5~6% 이내로 억제되어야 한다.

관련 지표들을 하나씩 점검해보자. 먼저 증가 속도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이하 가계)의 대출금은 2014년 6.2% 증가에서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10.4%, 10.7%로 빠르게 늘어났고 이후 5~8% 증가세를 보이다가 작년에는 다시 10.2% 급증했다. 작년말 가계대출 금액은 1천936조원이고, 올해에도 작년 수준의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16년 이후 가계의 순처분가능소득(이하 소득) 증가율이 2~4%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소득 대비 대출금액이 너무 많아져 가계의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졌다. 작년 연간 가계소득은 1천22조원으로 소득대비 대출금액은 약 2배(189.5%)에 이르는데 매년 20%씩 원금을 갚는다고 가정하면 상환에 10년이 걸리는 수준이다. 실제 만기는 이보다 짧고, 만기가 짧을수록 그 부담은 더 커진다.

가계대출의 부담을 파악하기 위해 매년 발표되는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2020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57.7%가 금융부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금융부채 규모는 평균 1억484만원이다. 이들 중 10.7%가 연체를 경험했고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는 가구는 67.6%이며, 상환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가구도 6.7%에 달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계 금융부채는 담보대출(78.4%), 신용대출(14.3%), 신용카드관련대출(1.2%), 기타(6.1%) 등으로 구성된다. 부채가 늘어난 이유로는 주택 매입자금과 전·월세 보증금 등 부동산 관련(34.5%), 생활비(29.6%), 사업자금(14.8%), 교육비(9.6%), 부채상환(5.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계대출이 동질적이지 않음을 뜻한다. 소득계층, 자영업자별로 이유나 대출형태가 다르다.

개별 능력과 상황은 더욱더 다를 것이므로 총액 증가율 한도로 대출을 규제하는 것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담보가치 대비 대출한도 규제(LTV)나 소득 대비 원리금상환 부담비율 규제(DSR)를 기본으로 개별적 대출심사로 충분하며 금융안정 관점에서는 자영업자 지원이나 개인 사전채무조정 강화 등의 미시적 대책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영끌·빚투'를 차단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인식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가계대출 증가가 부동산 가격상승의 원인이었고 대출을 억제해야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현상적으로는 가계대출 증가율과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비슷한 추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작년말 가계 부동산은 자산의 62.5%를 차지한다. 자산 항목에서 부동산이 오르면 부채 또는 순자산이 늘어나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관련 부채비율이 안정적이라면 최소한 부채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계대출/가계자산 비율은 작년 말 15.5%로 2018년(16.0%) 대비 하락했고, 가계대출/부동산 비율도 24.8%로 2017년(25.8%) 대비 떨어졌다.

무슨 이유로든 주택가격이나 전세보증금이 올랐다고 치자. 그런데 주택은 필수 자산으로 거래하지 않을 수 없고 소득이나 금융자산이 제한된 상황에서 부채가 늘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가계의 합리적 선택이다. 더욱이 가격 상승이 기본적으로 주택의 수급 관리, 그리고 기대 관리에 실패한 데 기인했다고 보면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시장 규제는 재고되어야 한다.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칼라무스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Calamus Gladio Fortior)'라는 라틴어 문장에서 따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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