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50번 접으면 그 높이는 얼마나 될까. 두께가 0.2mm이고 무한정 접을 수 있는 재질의 종이라고 가정해보자. 천장까지, 아니면 아파트 옥상까지. 놀라지 마시라. 그 높이는 거의 태양까지 간다. 믿기 힘들겠지만 계산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지구에서 태양까지 평균 거리는 약 1억5천만km이다.

우리는 현재 엄청난 디지털 혁명의 소용돌이에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 혁명이 가져올 변화의 스케일을 가늠하지 못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도 인간의 뇌는 선형적인 사고방식에 편향돼 이러한 개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50번 접힌 종이의 높이를 쉽게 가늠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가상자산은 그런 기술 기반의 자산이다. 대중매체가 이런 기술을 흥미 위주로만 전달하다 보니 사람들은 가상자산을 더욱 어려워한다. 자극적인 현상만 부각되고 본질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워 더욱 혼란만 가중된다.

일단 비트코인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가상자산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현란한 가격 현상만 쫓다 보면 잡다한 다른 코인에 더 관심이 가고 비트코인에는 소홀하게 되지만 가상자산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비트코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트코인은 여태껏 디지털 세계에서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했다. 그것은 디지털상에서 중개인 없이 희소성 및 소유권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디지털상에서의 진정한 희소성 및 소유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쉬운 예로 멀리 있는 친구에게 5만원의 빚을 갚아야 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만일. 5만원 지폐 사진을 찍고 이메일로 보내면 5만원 사진은 나에게 남아있다. 친구에게 진 빚을 이런 식으로 갚는다고 하면 나는 좋을지언정 친구는 수용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찍은 5만원 사진은 무한대로 찍어 낼 수 있는, 희소성이 전혀 없는 이미지화된 정보일 뿐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세계는 오로지 정보전달만 가능한 환경이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기존 인터넷이 이런 한계점을 지닌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중개인'이 개입해 장부를 관리함으로써 희소성 및 소유권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페이로 친구에게 5만원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희소성 및 소유권 구현이 아니다. 카카오페이라는 제3의 기관이 인증해줄 수 있는, 카카오페이 플랫폼에 종속된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희소성 및 소유권이다. 이는 현실 세계와 다르다. 현실에서는 직접 만나 5만원 지폐를 전달하면 된다. 5만원 지폐가 내 손에서 친구 손으로 건너가는 순간 소유권은 이전되며, 이 과정에서는 제3의 기관의 인증이 필요하지 않다. 만일 현실 세계가 그렇게 작동한다면 그 세계는 진정한 개인 사유재산과 소유권이 없는 셈이다. 비트코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가 활동하는 디지털 세계는 그런 봉건사회 같은 세계였다.

중개인 없는 디지털 희소성 및 소유권 구현은 마찰 없는 가치 교환(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왜 대단한 것일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또 하나의 마찰 없는 네트워크인 인터넷을 생각해보자. 중개인 없이 정보교환을 가능케 한 인터넷이 지난 30년간 우리 생활에 가져온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 예로 지금부터 15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 간 국제전화는 짧게 하고 빨리 끊는 게 상책이었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습은 인터넷 기술 덕분에 완전히 달라졌다. 인터넷 출범 당시 사용 사례가 이메일 정도로 단순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음성을 데이터화해 인터넷을 통해 보낼 수 있게 됐다. 통신회사(중개인)가 운영하는 고비용 통신망이 아닌 누구에게나 오픈된 소유권이 분산된(탈중앙화된) 인터넷망으로 음성을 전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국제전화시에는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앱을 사용해 음성뿐 아니라 얼굴까지 볼 수 있는 영상통화를 비용 부담 없이 몇 시간씩 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해 이제는 원격근무를 가능하게 하고 조직 운영체계에까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정보전달과정에서 중개인이라는 마찰 요소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기술로 현실화한 '중개인 없는 희소성 및 소유권 구현'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도 이와 유사하다. 중개인 없이 희소성 및 소유권이 구현되면 디지털상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산이 존재할 수 있다. 자산이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선 희소성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를 거래하기 위해선 소유권이 구현돼야 하는데 비트코인 기술이 이것을 중개인 없이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중개인에게 구애받지 않고 디지털상에서 자유롭게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이런 혁신적인 기술을 가장 신뢰 있게 제공하는 인터넷과 같은 글로벌 공공재이며 비트코인은 이런 기술을 사용할 때 필요한 회원권 같은 자산이다. 비트코인이 내재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위에 서술한 기술이 인류에게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으면 된다. 지난 13년간 비트코인을 둘러싼 발전과정을 보면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어떤 답을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가상자산업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헤드라인성 현상에만 몰두하는 것은 50번 접은 종이의 높이 측정을 선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현상이 아닌 본질에 초점을 두면 이런 기술이 인류에게 미칠 기하급수적이고 방대한 스케일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그래야 투자에 성공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사업모델도 나오고 사회 공익을 위한 산업정책 실현도 가능해진다. (정석문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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