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는 다양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 불확실성의 원인이 되는 리스크, 즉 위험 요소는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시장 변동성을 확대한다. 우리는 리스크를 그 특성에 따라 블랙 스완(black swan)이나 회색 코뿔소(gray rhino) 등으로 표현하곤 한다. 블랙 스완은 흑색 백조라는 이름만큼이나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은데,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유발한다. 지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의 코로나19 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회색 코뿔소는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사전적으로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올해를 돌이켜 보면 다양한 회색 코뿔소들이 중첩되면서 세계 경제의 회복세를 약화하고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는 경제 전망과 통화정책의 신뢰성 약화로 나타났다.

회색 코뿔소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경제전망 변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2020년 코로나 위기로 급강하했던 세계 경제는 점진적인 경제활동 재개로 2021년에 6.1%의 높은 경제 성장세를 보였다. IMF는 2021년 10월 전망에서 세계 경제의 회복 지속으로 2022년과 2023년에도 각각 4.9%와 3.6%의 양호한 성장세를 예상했다. 다만 당시 확산세를 보였던 델타 바이러스로 인한 추가적인 락다운 등을 글로벌 경제의 하방리스크로 지목했다. 2022년 1월 전망에서는 2022년과 2023년의 성장률을 각각 4.4%, 3.8%로 수정했다. 2022년 성장률 하향의 주된 요인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의 확산과 공급망 차질에 따른 에너지 가격의 급등이었다. 반면 2023년 성장률의 상향 조정은 2022년 말까지 예상되는 백신 접종 확대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

2022년 4월의 IMF 전망에서는 2022년과 2023년 세계 성장률이 다시 3.6%로 하향 조정됐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과 높아진 공급측 인플레이션 압력이 하방리스크로 지목됐다. 가장 최근인 지난 7월 전망에서는 2022년과 2023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3.2%와 2.9%로 재차 하향 조정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예상보다 높은 인플레이션, 예상보다 부진한 중국경제 그리고 예상보다 장기화하고 심화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부정적 파급효과를 지목했다. 결국, 이러한 세 가지 원인을 유발한 리스크가 시차를 두고 2022년 세계 경제에 영향을 준 회색 코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회색 코뿔소는 과소 평가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관련된 리스크다.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은 델타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여파가 하반기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백신 접종 확대가 코로나 확산을 제약하고 경제활동 재개를 가속화하며, 교역 및 관광 확대를 통해 세계 경제의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코로나 제재는 부분적으로나마 여전히 존재하며 관광 및 레저 부문의 회복세를 제약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3분기 중에도 일부 도시의 락다운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은 또 하나의 회색 코뿔소다. 러시아가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군사를 집결시키고 군사훈련을 할 당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능성과 여파는 과소 평가됐다.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강화가 러시아의 전쟁 의지를 약화할 것이라는 평가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더라도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당시와 같이 러시아 우위로 단기간에 전쟁이 종료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전쟁의 양상은 우크라이나가 선전하고 전쟁 기간도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하며 7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세 번째 회색 코뿔소는 중국경제 부진 리스크의 현실화다. 부동산 부문의 부실 심화와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주요 도시들의 락다운은 2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을 전기대비 -2.4%로 끌어 내렸다. 그런데도 시장은 하반기에는 중국경제가 세계 경기의 개선과 중국 정부의 인프라 투자 확대 정책 등으로 회복세를 보이며 연간 4%대 중반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8월 중순 중기유동성지원창구 대출 금리를 인하했고, 연이어 정책금리인 대출우대 금리도 내렸다. 그동안 경기 관련 통화정책의 필요성을 부인했던 인민은행의 기습적인 결정이다. 그만큼 중국 정부 당국의 경기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 이후 주요 IB 및 전망기관들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4%대에서 3%대로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경제 부진이라는 세 가지 회색 코뿔소는 시차를 두고 공급망 차질과 원자재, 특히 에너지 및 곡물 가격의 상승을 통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가속했다. 그 여파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판단을 일시적인 것에서 지속적이고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유로 지역의 위기는 유럽 재정위기 당시에도 잘 지켜져 왔던 달러화와의 패리티, 즉 달러와 유로화의 1대1 교환 비율을 깨트리면서 유로화 약세와 달러 초강세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세 가지 회색 코뿔소는 현재 진행형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2023년이면 코로나 사태가 종식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현재 고공행진을 하는 인플레이션은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공격적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위축과 그로 인한 유가 안정으로 점차 하향 안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부분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도 2023년에 종료되고, 일부에서는 정책금리 인하도 예상한다. 게다가 러시아는 최근 부분적 동원령을 내려 확전 가능성을 높였다. 중국경제는 부동산 부문에 대한 규제 완화와 본격적인 인프라 투자 확대 등 경기부양 정책 등으로 내년에는 성장세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말이나 2022년 초에 봤던 세 가지 회색 코뿔소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향후 경기나 금융시장에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는 이유이다. (장재철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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