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DB 및 재판매 금지.


(서울=연합인포맥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신영옥, 팝페라 테너 임형주는 한 아버지를 두고 있다. 지난 2020년 타계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예술 사랑은 익히 알려졌다. 타계 후에는 1만4천여점의 예술품을 국가에 기증해 '이건희 컬렉션'을 널리 알렸으며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술품보다 앞서 그가 사랑했던 것은 영화다.

1995년. 이건희 선대회장은 각 계열사에 흩어진 콘텐츠 사업을 한데 모아 '삼성영상사업단'이라는 일종의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한다. 삼성전자와 제일기획, 삼성물산 등의 실무진들이 '헐리우드식 영화 사업'을 한국에 정착하겠다는 목표로 한 데 모였다. 어느 정도 사업화 기간을 거쳐 제대로 정착하면 별도 법인으로 분리할 복안이었다.

현재 현대백화점 삼성무역센터점 맞은편 건물이 삼성영상사업단이 위치했던 곳이다. 당시 사업단은 19~20층을 사용하며 영상사업은 물론, 음반, 공연 기획 등을 총괄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역점사업이었던 만큼 관심도, 성과도 대단했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기점으로 평가받는 '쉬리', 홍콩 대가 왕자웨이 감독의 '해피투게더'가 삼성영상사업단을 거쳐 간 작품이다. 이외에도 '처녀들의 저녁 식사', '총잡이', 뮤지컬 '42번가' 등도 삼성의 손을 거쳐 흥행했다.

해외에서만 활동하던 조수미와 전속 계약을 맺고 이어 신영옥, 임형주를 영입해 'K-성악'을 이끈 곳이기도 하다.

불행은 폭풍처럼 불어닥쳤다.

한창 국내외로 드라이브를 걸 때, 글로벌 사업에서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클래식 DVD 콘텐츠 제작을 추진하던 삼성영상사업단은 미국 줄리아드 음대 A 교수와 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계약금을 받고 난 뒤 A 교수의 태도 돌변으로 몇 달씩 프로젝트가 지연됐고 그사이 외환위기(IMF)가 발발했다.

당시 삼성영상사업단은 공공연하게 "삼성은 영화 산업에서 결코 손을 떼지 않을 것이다"고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막기에 그 외침은 너무 작았다.

쌍용과 한라, 고합, 거평, 새한. IMF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90년대 중반, 자회사를 70개 이상 확장했던 삼성전자는 IMF를 거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조원 이상 급증한 채무를 갚으란 채권단의 아우성을 잠재우기도 벅찼다.

상흔은 아직도 발견된다. 1997년, 회사 유동성을 확보하고자 발행한 양키본드 6천만달러는 오는 2027년까지 발목이 묶인 상태다.

결국 이건희 선대회장은 1999년 삼성영상사업단의 해체를 지시했고 여기에 발 담갔던 인재들은 CJ를 비롯해 충무로 영화계, 음반 업계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대표 기업인 티빙의 양지을 대표, 윤용필 스카이TV 대표이사, 조재룡 SBS 미디어넷 대표, 노종윤 노비스엔터테인먼트 대표, 영화 명량, 노량 등으로 유명한 김한민 감독 등이 삼성영상사업단 출신이다. 안석준 FNC엔터테인먼트는 삼성영상사업단 신입사원이었다. 삼성영상사업단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된 셈이다.

이후로도 삼성은 콘텐츠 사업을 포기하지 못했다.

2009년에는 전자책 단말기 사업에 진출했으나 2014년 종료, 2008년 출범된 미디어 솔루션센터는 2014년 통폐합됐다.

이후 2014년에도 음악 및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인 '삼성 밀크 뮤직'과 '삼성 밀크 비디오'를 출시했으나 2017년 철수한 바 있다.

2017년 '두 개의 빛:릴루미노', 2018년 '별리섬', 2019년에는 '메모리즈'와 '선물'이라는 단편 영화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일환인 홍보 활동이라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삼성 단편 영화 '별리섬'
DB 및 재판매 금지.


한번 찢어진 종이는 다시 붙이기 어렵다. 붙인다 해도 너덜하고 쉽게 찢기기 마련이다. 삼성이 콘텐츠 사업에 다시 뛰어들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영상사업단의 창단과 해체에 발을 담갔던 고위 관계자는 "당시 삼성은 지금처럼 굴지의 대기업도 아니었고 IMF로 현금을 끌어오기도 바빴다"며 "대부분의 인력이 CJ 계열로 넘어갔지만, 대기업이 콘텐츠 사업을 하기에는 경쟁력이 없는, 아쉬운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기업금융부 김경림 기자)

klkim@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8시 28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