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전일인 15일 오전 9시. 제54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가 시작됐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푸른 계통의 넥타이를 매고 연단에 올랐다. 올해는 작년보다 다소 묵직한 느낌의 감색 넥타이다.

인사말 하는 한종희 부회장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1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4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3.15 xanadu@yna.co.kr

'시장이 어려워도 우리는 잘했다. 앞으로도 투자는 늦추지 않겠다. 환경 경영 강화한다. 배당 정책 이행한다.'
어느 기업 주주총회에 가도 이사회 의장이라면 할 법한 말들로 주총이 시작됐다. 올해 특이한 안건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다소 지루하다면 지루하다.

한창 사업 부문별 경영 현황을 설명하던 중 올해 초부터 삼성전자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단어가 등장했다. '로봇'.
"향후 본격화할 로봇 시대에 대한 선제 대응도 강화하겠다. 다양한 로봇에 대한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고객이 실생활에서 로봇을 체험할 수 있는 제품 개발도 확대하겠다."
새해 벽두를 연 삼성전자의 투자는 해외기업이 아닌 코스닥 상장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였다. 590억원을 들여 지분 10.3%를 확보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투자의 의미에 대해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신성장동력은 로봇이나 메타버스 등을 많이 보고 있다"며 "올해 안에 EX1이라는 버전으로 로봇이 출시될 예정이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로봇 사업을 공식화한 자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가전 박람회 CES였다. 연초 글로벌 가전회사들의 새로운 기술과 사업 방향성을 제시하는 자리다.

다시 시계를 3월 15일 오전으로 돌려본다. 주주들의 이런저런 성토가 마무리된 11시. 주총이 열린 수원컨벤션센터 12번 게이트 쪽에 마련된 VIP 엘리베이터 쪽으로 한종희 부회장은 유유히 걸어갔다. 주총장에서 엘리베이터까지는 고작 15미터.
단골 질문인 "인수·합병(M&A)은 없냐"는 기자들 물음에 한 부회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오늘은 주총이니까"라며 말을 아꼈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로부터 7시간 후, 한 부회장이 포커페이스로 사라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콜옵션 조건이 포함된 주주간계약 체결' 공시가 나오면서다. 공시 전에 내부자가 해당 사안에 대해 발설하는 건 자본시장법에 위반된다.

삼성전자는 이날 레인보우로보틱스 주식 91만3천936주를 장외에서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보유 주식은 194만200주에서 285만4천136주로 확대했다.

지분율로 따지면 15% 수준이지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콜옵션' 계약이다.

삼성전자는 6년 이내에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계약을 추가했다. 콜 행사시, 삼성전자의 보유 주식은 1천140만4천575주, 지분율 60%로 최대 주주가 된다.

로봇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꼽으며 로봇 기업 지분을 추가 매입하고, 심지어 콜 옵션을 걸어 중장기적인 인수 가능성도 열어뒀다. 최근 삼성전자의 행보는 명확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주총이 끝나고 한종희 부회장은 회사 임원, 사외이사 등과 오찬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일에 쏟아진 정부의 첨단 산업단지 조성과 삼성전자의 60조원 투자 뉴스도 열심히 모니터링했을 것이다. 그리고선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공시부에 주식 보유 상황과 콜옵션 계약 서류를 제출했다는 보고도 들어왔을 것이다.

2023년 3월 15일 오후 5시, 관련 공시가 표출됐다. 로봇 사업 본격화의 신호탄이 쏘아졌다. 한종희 부회장의 유난히도 숨 가쁜 8시간이 지나갔다.

(기업금융부 김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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