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옛날, 아주 멀지는 않고 한 100여년 전쯤에. 미국에 호튼이라는 집안이 있었어. 영국에서 온 아저씨인데, 하여튼 언제서부턴가 동부 어드메서 유리 장사를 한 모양이야. 그 집 장남이 꽤 특출났는데, 이놈이 어디서 괴짜 하나를 만났더라고. 병아리를 부화하겠다고 달걀을 품던 인간인데 이름은 토머스 에디슨이라고 해. 호튼가 장남은 에디슨이 만드는 전구에 유리를 공급하기로 하지. 혹시 '코닝'이라고 들어 봤니?"

170년이 넘는 미국의 소재 전문 기업 코닝의 이야기다. 창업주인 호튼 가문은 전문 경영인을 두고도 여전히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그만큼 사업가적 유전자가 강한 집안이다.

코닝의 성공 신화는 창업주의 아들인 에모리 호튼 주니어부터 시작된다. 에모리 주니어는 토마스 에디슨에 전구를 공급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전까지 채권단의 관리를 받던 코닝은 에모리 주니어와 에디슨의 성공으로 1872년 다시 호튼가의 품으로 돌아왔다.

기념비적 사업가인 에모리 주니어는 1909년 사망했다. 이듬해, 12시간의 시차가 나는 한반도의 경상남도 의령에서 또 다른 기념비적 인물이 태어난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다.

그로부터 약 60년 후, 에모리 주니어의 이름을 본뜬 손자는 한국의 이병철 창업 회장을 만나게 된다. 손자 에모리 주니어가 코닝의 의장이던 시절이다.

이병철 창업 회장은 1973년 6월, 지분 50대 50의 합작 회사를 세우기로 의기투합한다. 코닝 입장에선 '되는 신규 시장'이, 삼성전자는 합리적 가격의 브라운관이 절실했다. 같은 해 12월, 각국의 정부 인가를 거쳐 마침내 '삼성코닝'이 출범한다.

삼성코닝은 1975년 4월 수원전자단지에 국내 최대 규모인 연산 120만개의 흑백 브라운관용 벌브 유리 융착 생산 라인을 준공했다. 1983년에는 컬러 브라운관용 벌브 유리도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후 삼성코닝은 PDP에서 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까지 삼성의 디스플레이 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故 이건희 선대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은 후에도 호튼가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이건희 선대 회장과 故 제임스 호튼 코닝 명예회장은 서울과 뉴욕 코닝 본사를 수시로 오가며 사업 파트너, 나아가 친우(親友)로서의 관계도 맺었다.

이 선대 회장은 한남동 개인 사무실인 승지원에 제임스 호튼 회장을 초대하는 등 허물 없이 지내곤 했다. 호튼가와의 만찬 자리에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가족들도 모두 대동하곤 했다.

이건희 회장, 제임스 호튼 코닝 명예회장 면담
연합뉴스 자료 화면

 

양사의 끈끈한 우정은 3대째 계속되는 중이다. 요즘 코닝은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에 '고릴라 글라스'를 공급하는 회사로 더 알려져 있다.

이재용 회장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처럼 코닝과 관계 유지에 힘을 쓰고 있다. 그는 웬델 윅스 현 코닝 회장과 2011년과 2013년, 각각 미국 뉴욕과 서울에서 만나 사업 협력을 논의한 바 있으며 지난 4월에도 한미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 가문과 가문의 만남은 일종의 유산이자 우정이다. 동시에 자산이다. 이제 양사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이고, 코닝에 있어 한국은 최대 생산국이자 최대 고객인 삼성전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웬델 윅스 코닝 회장은 한국을 "코닝의 제2 고향"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양사는 합작 관계를 청산한 뒤 오히려 돈독해졌다. 독립적 경영권을 얻은 코닝이 일본의 생산 및 연구·개발(R&D) 시설을 한국으로 가져오며 훨씬 집중적인 운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코닝은 TV, 스마트폰에 이은 '다음 단계'를 이제 함께 고민하고 있다. 코닝이 전일 공개한 '벤더블(구부러지는) 유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미 삼성전자 갤럭시 Z 신제품에도 적용된 이 유리는 향후 첨단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에도 탑재된다. 이날(1일) 충남 아산에서 만나는 이재용 회장과 윅스 회장이 어떤 청사진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다.

인사말 하는 웬델 웍스 코닝 회장
(서울=연합뉴스) 웬델 윅스 코닝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3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코닝 한국 투자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8.31 [코닝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기업금융부 김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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