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당신은 재벌가 막내아들이다. 회삿돈 50억원으로 카페 하나 차려보려고 했는데 고스란히 날렸다. 큰돈도 아니니 아버지, 재무팀과 짬짜미를 맞춰서 특수목적법인(SPC)에 투자했다가 전액 손실로 청산한 걸로 했다. 냄새를 맡은 검찰은 바로 수사에 들어갔고, 당신은 자금 횡령으로 기소된다. 이때 당신이 받게 될 형량은 얼마일까?'
가상의 시나리오다. 요컨대 50억원, 혹은 얼마라도 회사 자금을 횡령했을 때 재벌 총수 일가가 받게 될 형량은 '보통' 얼마일까.

'재벌 3·5'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총수 일가가 법정에 서게 될 경우 일반적으로 3년 징역에 5년 집행유예를 받아왔다는 뜻이다. 3년 징역은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통한다.

이 법칙은 과거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진보 성향을 띄는 싱크탱크인 경제개혁연구소는 재벌 일가의 유죄 판결과 실제 형사 처벌 사례를 분석했다.

2011년부터 2021년 5월까지 유죄 확정된 11건의 재판 결과, 70명 중 56명이 유죄가 선고됐다.

이 중 유죄를 받은 총수 일가 19명 중 18명은 최소 1년에서 4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는데 실형으로 이어진 경우는 절반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형량을 모두 채우고 만기 출소한 경우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게 경제개혁연구소의 분석이다.

경제개혁연구소 자료
연합인포맥스 캡처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징역 4년)과 최재원 부회장(징역 3년 6월)은 각각 사면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재현 CJ 회장(징역 2년 6월)도 병으로 구속집행정지를 받아 복역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사면으로 풀려난 바 있다.

그밖에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징역 3년, 신동빈 회장도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은 바 있다. 이밖에 이중근 부영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 등이 '재벌 3·5' 법칙의 수혜를 입었다.

이에 앞서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역시 경영권 세습 및 차명 계좌, 1천억원대 세금 포탈 혐의로 징역 3년과 집행 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08년의 일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듬해 사면을 받았다.

새삼스럽게 총수 일가의 구형량이 회자하는 이유는 하나다. 재벌 집 막내아들은 아니고, 첫째 아들인 이재용 회장 때문이다.

검찰은 최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의혹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5년을 구형했다. 검찰 구형량이 5년이라는 건, 이후 사법부에서 그 이하를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러한 재벌 3·5 법칙을 염두에 두고, 법조계는 이재용 회장 역시 결국 선례를 답습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에 구형량이 예상보다 낮다는 점에서, 검찰도 실제로 이 회장이 얻은 이득을 구체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단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구체적 금액이 특정되지 않더라도 피고인이 얻은 이득이 50억원 이상이 확실할 경우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구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 법정으로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7 pdj6635@yna.co.kr

 


한 로펌 변호사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5년이면 사실상 최소 형량"이라며 "구형 5년이면 법원에서 3년 이하를 선고하고 집행유예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 이외에 전문 경영인 등 피고인들의 형량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임원들의 경우 총수보다 형량이 낮게 나온다는 전례가 다수 있으며, 이번에도 이렇게 구형됐다는 점에서 모두 집행유예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당신이 재벌 총수 일가고 50억원 정도의 배임 또는 횡령 혐의라면 아마도 징역은 3년, 집행 유예는 5년일 공산이 크다. 중간에 각종 사면 및 가석방, 보석 등의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장장 3년 2개월간 끌어온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 및 회계 부정 1심 재판이 지난 17일 마무리됐다. 이재용 회장 등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년 1월 26일에 나온다.

(기업금융부 김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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