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당시 내한했던 한 서유럽의 스케이트 선수가 맥락 없이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를 비판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평소 한국에 관심이 없는 외국인이 어쩌다 한번 접한 소식이 개고기 문화였다면 그 사람은 평생 한국에 대해 단편적이고 왜곡된 인식만 갖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중들의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인식 또한 이런 방식으로 형성된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만 어쩌다 한번씩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 '코인은 위험한 것' 또는 '코인은 사기꾼들의 소굴'이라고만 생각하고 확증 편향을 통해 그러한 인식이 굳어진다. 몇 달 전 한 국내 증권사 임직원이 '최소한의 윤리 의식을 갖고 있는' 증권사가 가상자산 거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발언이 이러한 현실을 잘 나타낸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사건·사고가 가상자산을 정의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주 언론은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미국 정부와의 민사 및 형사 소송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43억달러의 벌금을 지불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바이낸스의 창립자 창펑자오는 자금 세탁법 위반, 고객확인제도 미준수, 미등록 선물거래소 운영 등의 혐의를 인정하고 대표직에서 사임한다고 하였다. 중죄이기 때문에 형벌에 최대 18개월의 징역이 포함될 가능성 또한 남아있다. 이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혹자는 가상자산 산업의 어두운 '민낯'이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전통 금융권의 민낯은 더욱 추하다. UN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자금세탁 규모는 8천억~2조달러이며(전 세계 GDP의 2~5%) 대부분 전통 금융기관을 통해 발생한다. 실제로 저명한 대형 글로벌 은행들이 자금 세탁법 위반으로 거의 매년 크고 작은 벌금을 지불한다. BNP파리바, 골드만삭스, JP모건은 자금 세탁법 위반으로 각각 2014년에 89억달러, 2020년에 72억달러, 2014년에 26억달러의 벌금을 지불하였다. 이런 일이 하도 상습적으로 발생하니 글로벌 은행 경영진은 벌금을 일종의 사업 운영비 정도로 생각한다는 말이 돌 정도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러한 사실은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그러니 대중들의 무지 속에 전통 금융 기관은 최소한의 윤리 의식이 있다는 주장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한때 점유율 2위로 바이낸스를 위협하던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 또한 대중들의 편견에 기여했다. FTX는 고객 예치금을 계열사인 알라메다가 레버리지 트레이딩 등에 무단 남용하였고 결국 고객의 자금 인출 요청에 응하지 못해 작년 11월 파산하였다. FTX 창업자 샘 뱅크맨 프리드는 횡령 및 사기죄 혐의로 고소되었고 바로 몇 주 전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의 고객 자금 횡령은 바이낸스보다 훨씬 죄질이 나쁘다. 바이낸스는 재무적 피해 없이 지금까지 정상 운영되고 있는 반면 FTX의 파산은 수많은 사람에게 큰 재산 피해를 입혔다.

전통 금융권은 이런 일이 없는 걸까. 글로벌 금융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2011년 파산한 파생상품 중개업체 MF글로벌, 그리고 2008년 메이도프 투자 스캔들에 대해 익히 잘 알 것이다. MF글로벌의 경우 보유했던 유럽 국채 포지션에 크게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고객자금을 사용하여 메꾸려 하였다. 메이도프 투자 스캔들의 경우 40년 넘게 대대적으로 폰지 스킴이 운영되었으며 규제당국이 6번이나 조사에 착수했음에도 사기행각을 제때 찾아내지 못하여 결국 총 투자자 피해 금액이 200억달러에 이르렀다.

비단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시중은행 내부 직원에 의한 자금 횡령은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모 은행은 작년 횡령 규모만 600억원에 달한다. 전통 금융기관의 위법이 하도 비일비재하다 보니 무감각해져서일까. 대중들은 이러한 현실은 인지하지 못한 채 가상자산 산업에서만 유독 자금세탁, 횡령, 사기 등이 발생한다고 오해한다.

'코인은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은 어떨까. 물론 전통 금융 자산에 비해 가격 변동성은 높다. 트레이딩, 리스크 관리 경험 등이 없는 초보자는 심한 변동성 앞에 패닉하고 손실을 보기 일쑤다. 하지만 이는 전통 자산 시장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한다. 2011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매 분기 외환거래를 하는 개인투자자 중 70%가 손실을 입으며 1년 단위로는 그 수치가 100%라고 한다. 2016년 영국 금융행위감독청은 1년간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개인투자자 중 80%가 손실을 입는다고 말한다.

심지어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이자 상품도 원금손실이 발생한다. 최근 불거진 홍콩 ELS 사태가 그것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내 시중 은행을 통해 판매된 홍콩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4조원 넘는 물량이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고 한다. 옵션계약과 주식지수를 엮어서 설계한 고이자 지급 상품에 대해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 리스크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대량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금융감독원은 불완전 판매 여부를 조사한다고 한다. 판매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면 판매자는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손실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다. 리스크에 대한 이러한 기본 개념이 없으면 투자 손실은 누군가의 악의나 사기에 의한 것이라 착각하고 '악마화'할 대상을 찾는다. 이처럼 큰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일단 어딘가에 위법행위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뉴스거리로 삼는 언론이 변동성 높은 가상자산에서 발생하는 투자자의 손실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이것이 과잉 보도되면 어느새 대중들 인식 속에 '코인은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힌다.

명심해야 할 점은 기술은 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불, 칼, 자동차, 비행기 등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유용한 기술일 수도 테러의 도구일 수도 있다. 유용하게 사용하려면 기술의 본질을 파악하고 교육을 통해 안전하게 다루는 방법을 습득해야 한다. 가상자산 기술도 마찬가지다. 이 도구를 통해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어쩌다 한 번씩 접하는 언론보도만으로 기술 자체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쩌다 한번 접한 극소수의 식문화를 기준으로 한 나라 전체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석문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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