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말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통화정책의 기준이 되는 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이러한 결정은 만장일치였으며, 회의 의장인 한국은행 총재를 제외한 6인의 의원 중 4명이 3.75%로의 인상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통위 위원 절반 이상이 향후 경제 상황이 금리 동결보다는 인상 쪽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금통위는 향후 통화정책방향에서 통화정책 긴축기조 지속 기간에 대한 표현을 '상당 기간'에서 '충분히 장기간'으로 변경했다. 기준금리 동결이 당초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을 시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동안 3% 내외를 지속할 것이라는 점과 가계부채 및 부동산 가격 상승 우려 등을 들었다.

이번 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과 더불어 한국은행은 2023년과 2024년 경제전망을 새로 발표했다. 2023년 경제성장률은 1.4%로 지난 8월의 전망을 유지한 반면, 2024년은 2.2%에서 2.1%로 소폭 하향했다. 2024년의 성장률 하향 조정은 민간소비와 건설투자가 당초 전망보다 부진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3.6%와 2.6%로 종전 전망에서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보았다. 특히 2024년 상반기까지 소비자물가는 한국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 2%를 상회하는 3% 내외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8월 이후 공공요금 인상의 여파와 식료품과 에너지 물가 상승이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과 공업제품 물가를 높일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기본 전망에 더해 두 가지 시나리오 분석을 했는데, 하나는 지정학적 분쟁 심화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경우와 다른 하나는 반도체 등 글로벌 제조업 경기가 빠르게 반등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2024년 경제성장률은 기본 전망보다 0.2%포인트 낮은 1.9%,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2%포인트 높은 2.8%로 예상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당초 전망보다 0.2%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전망했다. 이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각각 50%의 확률로 현실화한다고 하면, 경제성장률은 2.1%로 기본 전망과 같으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로 높아진다. 한국은행이 상정하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에서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배경인 인플레이션과 가계부채 우려가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다. 우선, 물가상승률이 한국은행의 전망보다 빠르게 하향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11월 소비자물가는 전월 대비 0.6% 하락했고, 전년 동월에 비해서는 3.3% 상승했다. 시장이 예상했던 전년 동월 대비 3.6% 내외를 밑돌았다. 석유류와 농축산물 가격의 하락 폭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류 물가는 향후에도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하지 않는다면 상승보다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이번 전망에서 국제유가가 산유국 감산 등의 영향으로 2023년 배럴당 83달러에서 2024년에는 85달러 내외로 높아질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0월 초에 시작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려와 달리 확산하지 않으면서 국제유가는 여전히 배럴당 7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OPEC+의 자발적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유가는 큰 변동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2024년의 글로벌 성장세와 더불어, 원자재 수요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2023년보다 약하다는 점에서 수요부진이 산유국의 감산 효과를 상쇄해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공급측 물가 압력을 제약할 전망이다.

수요측 물가 압력도 크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하락압력이 예상된다. 한국은행의 전망대로 2024년 경제성장률이 2.1%일 경우,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경제활동 수준은 2023년에 이어 두 해 연속 잠재 수준을 밑도는, 즉 마이너스의 산출물 갭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요측에서도 물가 압력이 약화하면, 향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될 수 있다. 즉, 한국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 2%의 달성이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행의 가계부채에 대한 판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완만한 하락 흐름을 보여 긍정적이나, 기준금리 조기 인하와 같은 섣부른 경기 부양의 경우,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유발해 부채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기준금리가 낮아서가 아니었다. 게다가 최근의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는 분양 물량이 많았던 2021년과 2022년 수준을 밑돌고 있다. 향후 주택경기 전망은 불투명하고, 거래량 또한 제한적일 것으로 보여 주택담보대출 증가도 크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이미 높은 가계부채 부담 하에서 기준금리의 하락이 얼마나 주택 수요를 증가시켜 가계부채를 악화시킬지도 의문이다. 한국은행이 예상하는 2024년과 2025년의 마이너스 건설투자를 감안하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한동안 하락할 전망이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이 1천조원에 육박하고, 중소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파산신청 건수도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3년 이후 최대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문제가 앞에서 이야기한 전반적인 경제활동의 장기적 평균, 즉 잠재 수준을 밑도는 마이너스 산출물 갭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면 구조조정 효과도 의문이다. 한국은행 총재는 현재의 기준금리가 충분히 긴축적이라고 평가했다. 충분히 긴축적인 통화기조 유지는 마이너스 산출물 갭을 더 확대할 수 있다.

물가의 하방 압력과 가계부채에 대한 과도한 우려, 마이너스 산출물 갭, 즉 잠재 수준을 밑도는 경제활동 등을 감안하면, 한국은행의 의도대로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는 충분히 장기간 지속된다고 해도 긴축의 정도를 너무 늦게 완화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장재철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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