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정선영 특파원 = "시장 상황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집을 팔기 좋은 시점입니다"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집 우편함에 지역 부동산에서 보낸 홍보성 우편물이 들어 있었다.

집을 사고 싶어 하는 구매자들이 많으니 집을 팔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는 우편물이다.

친절하게도 팔린 주택수와 거래량, 중간가격, 가장 낮은 가격과 가장 높은 가격에 대해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하는 통계도 곁들였다.


미국 부동산 홍보 우편물

 


미국의 주택 보유자라면, 그리고 한 번쯤 집값이 높을 때 팔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갖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우편물이 돈다는 것은 그만큼 집값이 아직 높고, 매물이 부족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동산의 입장에서 잠재적 매물을 선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주택시장은 주택 가격과 금리가 고공행진을 펼치면서 한창 뜨거워지다 소강상태가 됐다.

높아진 집값과 고금리, 엄격해진 대출 여건에 매물 부족까지 겹치면서 거래가 부진해졌다.

이면에는 매수자들이 안 사는 게 아니라 못사는 현실도 숨어있다.

미국인들의 주택 구매력은 39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에 등록된 주택 중 16%만이 미국의 보통 가정이 부담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고 설명했다.

모기지 금리 급등도 걸림돌이었다. 미국의 대표 주택담보대출 금리인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지난해 20여년 만에 최고치인 8%대까지 오른 후 6%대 후반으로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 미국 주택보유자들이 낮은 수준의 모기지 금리를 내고 있는 점은 주택 매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됐다.

만약 3%대 언저리에서 모기지 대출을 받은 집주인이 집을 팔고 이사하려면 7%대 이자를 내야 한다. 게다가 새 집 가격도 올랐기 때문에 주택을 사고팔 때 들어가는 제반 비용도 높아졌다.

시급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3%대 이자율을 포기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택 보유자는 집을 매물로 내놓지 않게 되고, 시장에 매물이 부족하니 수요가 우위를 보여 주택 가격은 계속 올라가는 악순환이 생긴다.

미국 매체에서는 이런 현상을 '황금 수갑'에 비유했다. 낮은 금리라는 좋은 혜택에 묶여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새로 주택을 사려는 매수자들도 최근의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매물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집이 많지 않다는 것은 '셀러 우위의 시장'으로 매수자 간 경쟁이 세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을 구매하려면 리얼터를 통해 가격을 더 높게 부르거나, 은행에서 대출금을 잘 조달할 수 있는지 확인받은 사전 승인 레터를 첨부하는 등 괜찮은 거래상대방임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경쟁자가 너무 많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경쟁자 중에 만약 현금박치기로 집값을 지불하는 부유한 중국 매수자와 만나게 된다면?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도 거래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그렇다 보니 미국 사람들도 첫 주택을 사기가 더욱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주택시장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반등한 배경에도 주거비는 핵심 요인이었다.

12월 주거비는 전월보다 0.5% 올라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높았다. 12월 주거비는 전년 동기 대비로는 6.2% 상승해 전체 CPI 증가율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주거비 항목은 주로 임대료와 보유한 집의 임대료 환산 수치 등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주택 관련 비용이 완화되는 것은 미국 인플레이션 안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당국자들도 주택 비용이 더 낮아져야 함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지난해 12월 물가지수 반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인플레이션 레벨이 완화하고 있지만 서비스와 주거비는 단절돼 있다"고 말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도 주택 비용과 임금을 더 완화해야 인플레이션이 2%로 갈 수 있다고 봤다.

이에 미국 주택시장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만한 금리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됐다.

높아진 모기지 금리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2년 사이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정책 금리가 제로 금리에서 5.25~5.50%까지 뛰었기 때문이다.

뱅크레이트기준으로 14일 현재 30년만기 모기지 평균 금리는 7.02%로 전주보다 7bp 정도 내렸다.

그럼에도 리얼터닷컴이 최근에 내놓은 보고서는 매우 인상적이다.

집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모두 주목할 만한 '매직넘버(Magic Number)'에 관한 내용이다.

주택 시장의 일시 정지 버튼을 해제하고, 다시 거래가 활발해지게 할 모기지 금리 숫자는 얼마인가.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모기지 회사의 메이슨 화이트헤드 매니저는 "만약 금리를 5%로 되돌릴 수 있다면 엄청난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금리에 따른 고통을 덜고, 주택 거래가 다시 활발해질 수 있는 모기지 금리 수준으로 풀이된다.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모지기 금리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리얼터닷컴은 모기지 금리가 올해 6.8%, 2024년 말까지 6.5%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캐피털이코노믹스(CE)도 2024년에도 금리가 계속 하락할 것이라며 2025년 말까지 모기지 금리를 6%로 보고 있다고 봤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면 모기지 금리가 5%대까지 낮아질까.
금리가 낮아지면 막혀있는 주택시장 거래의 물꼬를 트고, 높아진 주택 가격이 안정세를 되찾을까.

그러나 주택가격이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해 12월에 올해 미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 미국 주택가격이 0~3% 반등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금리가 내리더라도 공급 부족으로 막힌 미국 주택시장 상황이 쉽게 개선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미국 소더비 인터내셔널 부동산의 킴벌리 윤 리얼터는 "재고가 없으니까 집이 제값이 나와도 10% 이상 웃돈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매수)경쟁이 5~10명은 있기 때문에 집값이 향후 많이 하락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 일각의 경고도 무시할 수 없다.

모기지 금리가 낮아지고, 주택 거래가 재개되면서 주택 시장이 코스트코 할인 행사처럼 될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도 나온다.

낮아진 금리에 매수자들이 몰리면서 주택 가격이 내릴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경제 상황을 볼 때 주택시장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이유다. (정선영 뉴욕특파원)

syjung@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8시 22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