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증시에 상장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연일 화두다. 총 10개의 ETF가 동시 상장했으며 운용사 중에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블랙록, 피델리티 등도 포함돼 있다. 상장 후 5주 정도 지난 현재 시점에서 총 유입자금은 50억 달러에 달한다. 일부 ETF에서의 자금 유출을 감안하더라도 하루 평균 2억~3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비트코인 시장에 순유입된 것이다. 그 규모와 속도는 가히 역대급이라고 불릴 만하다. 세계 최대 금 ETF인 GLD는 운용자산이 50억 달러 수준에 이르기까지 2년이 걸렸다. 투자 자문사 등 미국 내 펀드 유통업체들이 새 금융 상품을 실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ETF 판매 활동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상황이라 앞으로의 자금 유입이 더 기대된다. 한마디로 비트코인 제도권화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 것이다.

하지만 국내 사정을 보면 뭔가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다. ETF 상장 직후 규제 당국은 자본시장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며 국내 증권사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 지원을 못 하게 하고 있다. 해당 법규에 의하면 가상자산은 기초자산이 될 수 없다는 유권해석에 기반한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증권사들은 신규 상장된 ETF뿐 아니라 지난 2년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던 비트코인 선물 ETF까지 부랴부랴 거래지원을 중지했다.

이러한 대응에 대해 업계 안팎에서 논란이 많다. 한 법대 교수는 "행정법상 기존 유권해석을 따른 투자자들이 신뢰를 저버리는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이익을 침해당했다면 위법하다고 볼 수 있다"며 "행정소송이나 국가배상이 가능한 사안"이라고까지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자본시장법에 열거된 금융상품 기초자산 5개 항목 중 '기타'가 있는데 비트코인이 왜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싶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실은 금융위원회에 '결론을 정해놓지 말고 폭넓게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말대로라면 뭔가 다른 이유로 ETF 투자를 막기로 미리 결정하고 유권해석은 단순히 명분용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가 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가상자산 전반에 걸친 막연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 아닐지 유추할 뿐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런 막연한 느낌이라는 것이 국민의 선택권까지 빼앗을 만큼 과연 논리적이고 합당한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조금만 마음을 열고 지적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렇게 막연한 부정적 인식은 엄청난 왜곡과 오해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그 수많은 오해 중 두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일단 우리나라 국민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전체 가상자산 시가총액 중 0.1%에 해당하는 '김치코인'을 기준으로 나머지 99.9%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내린다는 점이다. 국내 언론 보도만을 통해서 가상자산을 접하다 보면 코인은 '사기', '범죄 수단', '실생활에는 쓸모없는 투기 자산' 정도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팩트 전달보다 자극적인 스토리텔링을 우선시하는 것이 대다수 대중 매체의 생리다. 따라서 가상자산 산업에 대해서는 가격 등락 및 사건·사고 외에는 뉴스성이 없다고 간주하고 대중의 공감을 얻으려고 생소한 해외보다는 익숙한 국내 소식을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건전하고 모범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국내 가상자산 산업을 대상으로 뉴스거리를 찾는 이에게 자극적 헤드라인의 소재는 너무도 많다. 하지만 이는 팩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가상자산 전체 시가총액 중 비트코인이 52%, 이더리움이 17%, 스테이블코인이 6.5%를 차지한다. 현시점에서 가상자산의 본질을 얘기하고 싶다면 0.1% 비중의 김치코인이 아니라 이 세 가지 카테고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상자산 시총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트코인도 오해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중 하나가 '투기 외에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법정화폐 외에는 경험하지 못한 현대인들의 편협한 일상에서 오는 오해다. 어떤 물건이 화폐의 세 가지 기능인 가치 저장 수단, 교환 매개, 회계 단위를 습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가 법령으로 정하여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인이 익숙한 법정화폐이며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 외에는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수천 년간 다른 방식의 화폐를 사용해 왔다. 권위에 의해 위에서부터 강요받는 화폐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오랜 기간을 거쳐 자연스럽게 합의에 도달하는 물건이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다. 밀, 소금, 조개껍질, 쌀, 면포 등이 과거 여러 공동체 내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합의에 의해 사용됐던 화폐의 예다. 이러한 물건들은 화폐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근대에 들어오며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이 금이다. 1871년부터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금본위제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금은 글로벌 기축 통화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으나 1971년 닉슨쇼크 이후 가치 저장 수단을 제외한 다른 화폐의 기능을 미국 달러에 넘겨준 결과가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금융 체제다.

'디지털 금'에 비유되는 비트코인은 후자에 해당하며 현재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성장 단계를 걷고 있다. 교환 매개와 회계 단위 기능까지 갖춰서 궁극적으로 화폐가 될지는 알 수 없으며 현시점에서는 중요하지도 않다.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유용성은 비트코인을 따라잡을 자산이 없다. 10년 전 미국에서 집 한 채를 사려면 약 5만 비트코인이 필요했다(50평 집 가격 약 24만 달러, 1비트코인=4.6달러 기준). 그 5만 비트코인을 지금까지 들고 있으면 같은 집을 3천 채 이상 살 수 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미국 금융 엘리트들은 이를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대중들도 ETF 출시를 계기로 그 이해도가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트코인 ETF 마케팅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금융 상품 마케팅은 쉽게 말하면 상품에 대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1~2년만 지나도 비트코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크게 개선돼 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글로벌 자산이며 그 성장 궤도는 한국의 국지적 상황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지금이라도 비트코인 현물 ETF와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정치인들의 최근 발표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치색과 무관하게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정석문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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