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정선영 특파원 = 신성한 우연(Divine Coincidence). 이는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통한 통화정책이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두 가지 책무를 모두 달성하는 경우를 설명하는 말이다.

아주 아주 일어나기 어려운, 그런 멋진 우연의 일치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2007년에 경제학자들의 논문에서 언급되면서 물가와 고용 관계를 설명하는 단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정선영 뉴욕특파원

 


미국 경제는 지금 소프트랜딩(Soft Landing), 황금 경로(Golden Path) 그리고 신성한 우연(Divine Coincidence) 등 온갖 좋은 말들로 표현되고 있다.

미국 경제가 그만큼 큰 타격 없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경로를 가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부터 물가가 안정되려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경제가 둔화돼야 한다고 봤던 물가와 고용 간의 상충관계가 크게 약해진 셈이다.

이는 종종 인플레이션 상승률과 실업률 간의 반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은 수년간 고용과 물가 간의 상충 관계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당국자들도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내비치고 있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미 연준 이사는 "고용시장이 심각하게 악화되지 않고 디스인플레이션 진전이 지속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상충 관계와 관련해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나타났던 상품과 노동력 부족이 빠르게 해소되면서 인플레이션을 낮추는데 도움이 됐다. 그 과정에서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GDP 성장률은 크게 올랐고, 실업률은 역사적인 저점 부근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간의 상충 관계는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의 미국 경기 호조는 팬데믹 이후의 이례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막으면 경제활동과 고용이 줄어들고, 경제 활동과 고용을 늘리기 위해 금리를 낮추면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2023년 미국 경제 호조와 인플레이션 하락을 '황금 경로'로 묘사했던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도 긍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그는 최근 연설에서 경기침체 없는 큰 폭의 인플레이션 하락을 언급하면서 황금 경로라고 부르는 것이 지속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준, 올해 금리 인하할 수 있을까

시장 참가자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계속 좋으면 올해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고용지표가 탄탄하게 이어지고, 실업률은 역사적 저점 부근에 있고, 인플레이션 역시 3% 부근에서 크게 반등하지 않는다면 금리 인하의 명분은 더욱 찾기 힘들어진다.

금융 시장은 올해 6월부터 연준이 금리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다.

CME그룹의 페드와치툴에서 6월 25bp 금리인하 확률은 52.8%다. 하지만 6월 금리 동결 확률이 36.7%라는 점에서 추가로 첫 금리인하 시기가 미뤄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연준의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일정을 볼 때 6월부터 금리를 인하하면 7월, 9월, 11월, 12월까지 총 5회 인하 기회가 있다.

현재 금융시장은 1회 25bp씩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워낙 경제 연착륙에 대한 기대가 높다 보니 50bp, 75bp와 같은 빅스텝, 자이언트 스텝에 대한 전망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같은 외부 충격이나 은행 위기 등 금융시스템 이슈가 나올 경우를 배제한 전망이다.

단순 계산으로 봤을 때 연준이 올해 총 125bp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셈이다. 현 수준인 5.25~5.50%를 기준으로 연방기금 금리가 12월에 4.00~4.25%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대 금리는 완화적인가…인하 후에도 제약적 여건 지속

여기서 4%대의 연방기금 금리는 완화적이라 할 수 있을까.

연준이 올해 5회 금리인하에 나서더라도 금리 수준이 여전히 제약적일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고민이 될 수 있다.

잉글랜드은행(BOE)도 최근 이같은 고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제약적인 수준을 유지하는 과정이 금리 동결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금리를 인하하는 과정을 포함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BOE의 휴 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제약적인 정책을 유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금리를 동결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통화정책 기조는 금리를 인하한 후에도 여전히 제약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도 얼마나 오래 제약적인 수준이 유지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이 공급망 충격 해소로 인해 좋아졌지만 그런 효과가 사라지고, GDP 성장률이 추세보다 3배 이상 높으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할 수 있다.

굴스비 총재는 제약적인 수준에 얼마나 머무를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면 제약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생산성이 얼마나 높은지와, 중립금리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를 시작해도 바로 제약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한동안 제약적 영역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 발표 자료
출처: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미 연준은 금리인하 시점에 대해 '인플레이션이 지속 가능하게 목표치인 2%로 향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 후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물가와 고용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신성한 우연'이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 경제라 해도 경제 둔화 신호 없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하락에 대한 확신을 갖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 수치는 매달 확인할 수 있고, 2분기까지 3회 이상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인플레이션 못지 않게 살펴볼 만한 숫자는 GDP 성장률과 실업률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실업률을 지난 1월까지 석 달 연속 3.7% 수준을 나타냈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는 확신을 줄 만한 신호로 GDP 숫자도 중요하다.

너무 높은 GDP 수치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잠재력을 품고 있을 공산이 크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은 3.3%였다.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미국의 연간 GDP 성장률을 2.5%로 전망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올해 내내 4%를 밑돌 것으로, 신규 고용 증가세는 연말로 갈수록 매달 10만 명 증가하는 수준으로 안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미국 경제가 너무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면 연준이 금리인하 버튼을 누르기는 쉽지 않다.

인플레이션 둔화와 함께 GDP 성장률이 얼마나 낮아질지 한 번 더 확인해야 할 수 있다. (정선영 뉴욕 특파원)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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