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3%'. 행동주의 펀드가 삼성물산에 제안한 배당 확대 안건의 득표율이다.

영국의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는 지난해 말부터 삼성물산에 배당금 확대와 5천억원 규모의 자사주 추가 매입 등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다.

이들의 현금 배당 요구는 7천364억원 규모로, 이사회 안보다 76.5% 큰 수준이다. 자사주 매입 요구까지 합치면 총 1조2천364억원의 현금 출혈이 발생한다.

되는 게임은 아니었다. 행동주의 펀드가 보유한 지분율은 고작 1.4%. 주주총회 안건에 상정된다고 하더라도 통과될 리 만무한 지분율이다.

그리고 15일 삼성물산 제60기 주주총회 당일 오전 8시.

주총이 열린 삼성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GEC)에 내로라하는 법무법인 변호사들이 모였다. 김앤장 박종현 변호사와 법무법인 린의 도현수 변호사, 밀로쉬 주르코프스키 변호사 등은 로비에 모여 화담을 나눈다. 김앤장 측은 삼성물산을, 법무법인 린은 5개 헤지펀드의 법률 대리인이다.

한 때 김앤장 동료였던 이들은 안부 인사를 비롯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의 권고 등 다양한 화제의 이야기를 나눴다. 양쪽 모두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이다.

오전 9시. 삼성물산 주총장은 헤지펀드와 사측의 콜로세움이 된다.

안건이 하나하나 상정될 때마다 소액주주들은 아쉬움을 쏟아냈다.

삼성물산(구 제일모직) 주식을 49년간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한 소액주주는 "삼성이라는 타이틀이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는 손해 본 것이 만회될 거라는 마음으로 수십 년을 기다렸다"며 "이렇게 49년을 기다리는 동안 삼성SDI, 삼성물산과 합병하면서 원금만 1억8천만원을 잃었고 이제 죽을 나이가 됐다"고 넋두리를 했다.

또 다른 소액주주는 "답은 주가에 있다"며 "아무리 나쁜 기업도 주가가 좋으면 좋은 기업, 아무리 좋은 기업도 주가가 나쁘면 나쁜 기업이 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삼성물산이 합병 이전의 주가를 만들기 위해서, 임직원들이 할 짓 못 할지할지 다 하고 있는 건지, 얼마나 절실함을 가졌는지 듣고 싶다"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 서한은 도화선에 불과했다. 편지를 열면서부터 불은 정신없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이들의 제안은 소액주주의 분노를 점화했고, 소액주주들은 이제 헤지펀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23%의 지지율이 그 방증이다. 5개 헤지펀드 연대의 지분율 1.4%를 제외한, 20% 이상의 지분이 설득된 것이다. 주식 수로 따지면 3천200만주에 이른다.

제 3호 의안이었던 자사주 추가 매입 안건 역시 18%, 약 2천400만주의 표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법무법인 린의 발언에 송규종 삼성물산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내년 하반기에는 다양한 주주환원 방법을 고민해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토록 하겠다"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오전 11시 20분. 도 변호사와 주르코프스키 변호사는 웃으며 주총장을 떠났다.

(기업금융부 김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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