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자산운용업계 경영자와 만나 한국 증시에 대해 아주 열띤 토론을 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해에 일을 시작하여 1990년대 후반에 펀드시장의 호황기를 함께 경험했다. 매일 밀려 들어오는 투자자금을 조금이라도 잘 투자하겠다고 열심히 기업 방문을 다니느라 전국이 일터였다. 그러나 기업은 순진한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솔직하고 투명하지 않아 투자에 고생을 많이 했다. 보통 30년이면 한 세대가 바뀐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는 한 업종에서 평생을 일했는데 변하지 않는 '상수'때문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고 공감했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금융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연초부터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달에 발표된 '상장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주로 기업의 자발적 기업가치 제고, 우수기업에 대한 투자 유도, 밸류업 지원체계 구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구체적인 유인 방법론 등이 빠져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다. 추가로 상반기 중에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므로 아직 실망하기에 이르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처 간 협업이 필요한 대책이 많아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중요한 것은 방향성과 의지이다.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동경증권거래소는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배 이하인 상장기업은 저평가 이유를 주주에게 설명하고 개선대책을 발표하도록 요청했다. 이것이 촉매제가 되어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길게는 일본이 지난 20년 이상 꾸준히 추진해온 기업지배구조개선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중 '아베노믹스'는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부 정책이 일관된 방향으로 추진된 것이며, 정책효과가 지금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본과 우리는 유사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있다. 지난해 동경증권거래소의 대책 발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율적인 권고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문화를 모르고 하는 평가라고 한다. 일본은 특유의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상장기업 내 모범사례를 후발주자가 따라가는 문화, 동경증권거래소가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막강한 위상 등으로 상당한 변화 압박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반면에 한국은 변화가 시작되면 특유의 '빨리 빨리 문화', 당국의 강한 추진력 등이 작용할 수도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가족이 대주주로 있는 경우가 많아 상속세 등 많은 부분에서 제도개선이 따르지 않으면 더 힘든 과정을 경험할 수도 있다.

결국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투자자의 반응에 달려있다고 본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투자자로 워런 버핏이 있다. 버핏은 2020년 8월 말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을 각각 5% 정도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그는 투자한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투자 이유로 설명했다. 최근 연례 주주 서한에 따르면, 지분율은 각각 9% 정도이고 미실현이익은 61%로 1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일본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이미 기업지배구조에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버핏은 한국 철강사에 2012년 투자를 시작했으나 약 3년 후 모두 정리하고 현재까지 상장회사에 대한 직접투자는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는 지난 세대와 달리, 저성장과 고령화를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다. 각국의 증시는 기업의 성장성이 정체된 상태에서 어떻게 시장의 규모를 확대하고 제값을 받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과 대만은 높은 무역 의존도, 인구 고령화, 지정학적 위험, IT 등 경기순환업종에 대한 높은 의존도 등 공통점이 많은 나라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지난해 대만의 2배가 넘지만 증시의 시가총액 규모는 유사하다. 이는 장기간 대만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1998년 미배당 이익금에 10% 추가 법인세 부과, 2006년 이사회 기능 강화, 상장 기업 간 경쟁을 유도하는 상위 20% 기업지배구조개선 지수 발표 등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간판 상장회사는 세계적으로 초일류 제품을 만들고 업종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낮은 PBR로 매우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인구감소, 연금 적자 예상 등으로 우리 다음 세대는 금융자산 축적관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반드시 법 개정을 하지 않고도 변화를 시킬 수 있는 방안들이 많이 있다고 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 어떤 자본시장을 물려줄까.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동헌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행정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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