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레코드 중심 주관사 선정, 성장 동력 제한

시장 조성·장기적 관점 수반돼야…"공기업 동참해야" 목소리도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국내 증권사가 한국물(Korean Paper)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KB증권을 제외하면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조차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트랙 레코드 부족과 외국계 증권사 대비 낮은 경쟁력 등 극복해야 할 과제도 산더미다.

후발주자라는 한계 속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외국계 증권사와의 경쟁을 이어가는 건 쉽지만은 않다. 동반성장 등 공적 가치를 중시하는 공기업들이 토종 투자은행(IB) 육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국내 증권사 역시 토종 IB 육성책에 기대기보단,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13회 연합인포맥스 금융대상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손병두 한국 거래소 이사장(뒷줄 왼쪽 세 번째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기억 연합인포맥스 사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을 비롯한 수상자들이 15일 오전 콘래드 서울에서 열린 13회 연합인포맥스 금융대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1.15 mon@yna.co.kr

◇트랙 레코드 장벽, 공기업 나서야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한국물 진입을 가로막는 요소 중 하나는 트랙 레코드다.

공기업 등 한국물 주요 발행사 대부분이 리그테이블 20위권 등의 기준점에 맞춰 RFP를 발송하고 있다. 20위권에 들어간 곳이 KB증권에 불과하다 보니 간혹 등장하는 토종 IB 육성의 기회는 주로 KB증권에 돌아가고 있다.

이외 국내 증권사는 한국물 시장에 진입하고 싶어도 입찰 제안서를 낼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셈이다.

A 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는 후발주자인 만큼 실무 역량을 쌓을 기회는 물론 트랙 레코드 자체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적 책임이 있는 공기업이라도 국내 증권사에 한해서는 리그테이블 중심의 기준을 풀어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상 아직은 토종 IB 육성책에 기댈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동참하는 발행사는 많지 않다.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해양진흥공사 정도에 불과하다. 과거 한국가스공사가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지난해 국내 증권사를 선임하지 않으면서 달라진 기류를 드러냈다.

공기업은 한국물 시장에서 15% 안팎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물량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성 등을 이유로 주관사 선정 기준점으로 리그테이블 순위를 강조하면서 시장 육성 등의 측면에선 미흡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조차도 토종 IB 육성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21년과 지난해 외평채 발행에서 국내사로는 KDB산업은행에만 맨데이트를 부여했다.

과거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현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을 선임해 토종 IB 육성에 나서곤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대한민국 정부라는 상징성이 크지만, 지난해에는 국내 증권사는커녕 국내 증권업 라이선스는 물론 한국 전담 인력조차 없는 외국계 하우스를 선정해 시장 조성과는 더욱 거리를 두기도 했다.

B 업계 관계자는 "사기업이야 수익성 등이 우선이다 보니 토종 IB 육성에 나설 필요가 없지만 공기업은 다르다"며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국내 증권사에 적절한 역할을 부여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기적 선순환 구조, 성장 타이밍 뒷받침

물론 국내 증권사의 주관 역량이 외국계 증권사와 대등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수년간 이어진 투자 등에 힘입어 점차 개선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C 업계 관계자는 "국내사는 아직 글로벌IB만큼의 파워는 갖지 못한 상태"라며 "다만 과거와 비교하면 해외 법인 등의 역량이 상당 부분 개선된 만큼 적극적인 투자로 점차 보완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입장에선 한 차례 투자를 마친 만큼 추가 확대를 위해서는 성과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물은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상당 시일이 걸린다. 수익이 실현돼야 추가 투자가 이뤄진다면 국내 증권사의 도전은 또다시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실제로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만 보더라도 조직 구축 및 인력 영입 등으로 투자에 나섰지만, 곧바로 이에 대응하는 수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국내 증권사는 여전히 세일즈 역량 강화 등 여전히 투자해야 할 부분이 많다. 수익 실현 시기를 기다리다 성장 타이밍을 놓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D 업계 관계자는 "한국물 시장에 뛰어든 국내 증권사 대부분이 신디케이트 역량만 겨우 갖춘 상태"라며 "세일즈 등의 경우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데 투입 대비 산출이 크지 않다 보니 성장 기반을 적시에 갖춰나가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증권사들의 투자는 시작됐지만 이에 호응하는 발행사가 미미한 터라 투자와 수익의 선순환 구조가 더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시장의 구조적 한계 등을 고려할 때 증권사는 물론 이들을 바라보는 발행사의 관점 또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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