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30대 이사ㆍ상무, 40대 전무. 외국은행 국내지점(외은지점) 직원을 처음 만나 명함을 건네받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마련이다.

외양에 비해 직급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통상 50대에 부장이 되고 상무와 전무로 승진하는 국내 은행과 달리 외은지점 직원들은 30대에 이사와 상무, 40대에는 전무 직함을 달고 임원이 된다.

이러다 보니 국내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외은지점으로 이직한 경우 직급이 급격하게 높아진다. 국내 은행에서 대리였다가 외은지점에서 이사가 되거나, 과장에서 상무로 변신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외은지점 직급에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이유는 본사가 한국 지점 직원들의 직급을 높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외은지점 본사들은 대개 관치금융의 성격이 아직 남아있는 한국 금융시장의 특성상 직급이 높은 편이 공무원들을 상대하기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을 만날 때도 직급이 높아야 신뢰감을 줄 것이라는 판단도 있다. 외은지점 직급 인플레는 세일즈 부문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외은지점의 한 부대표는 "본사에는 한국인들이 높은 직급을 좋아한다는 편견 같은 게 있다"고 말했다.

외은지점의 규모가 국내 은행보다 훨씬 작은 탓도 있다. 직원 수가 1만 명을 넘곤 하는 국내 은행들과 달리 외은지점은 직원 수가 많아야 100명을 조금 넘는다. 말 그대로 '지점'인 것이다.

이처럼 작은 규모에서 대표와 부대표, 전무, 상무, 이사 등의 직급을 차례로 부여하다 보니 외은지점 직원들의 직급은 국내 은행보다 훌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외은지점의 한 상무는 "국내 은행 지점에서 제일 높은 직급이 지점장이 아니라 대표라고 생각해보라"며 "자연스럽게 차장이나 과장급이 상무, 이사 같은 직함을 달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은지점의 상무나 이사는 국내 은행이라면 차장이나 과장 정도의 위치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내부적인 직급은 따로 관리된다. 명함에는 로컬 타이틀(local title)을 새기고 내부적 직급 체계는 본사에서 통용되는 글로벌 타이틀(global title)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같은 상무나 전무, 대표라도 내부적으로는 바이스 프레지던트(vice presidentㆍ부장), 디렉터(directorㆍ이사),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ㆍ상무), 시니어 매니징 디렉터(senior manaing directorㆍ전무) 등으로 따로 구분된다.

말 그대로 임원으로서 국내 은행의 전무나 상무처럼 본사 경영에 참여해 의사결정을 하려면 글로벌 타이틀상 이사회 위원(board member)의 직위에 올라야 한다. 대표가 시니어 매니징 디렉터 직급을 달곤 하는 외은지점에는 본점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셈이다.

외은지점 부대표는 "명함에 있는 직급보다 업무용 차량과 운전기사 제공, 글로벌 타이틀 등을 봐야 실제 직급을 수 있다"며 "대우나 글로벌 타이틀에 비해 외부용 직급은 유난히 높게 부여하는 외은지점들도 있다"고 말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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