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삼성그룹이 최근 일주일 새 삼성SDI-제일모직과 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을 연이어 발표했다.

삼성발 거래 냄새를 맡은 언론도 이사회 당일 직전에서야 삼성SDI-제일모직의 합병을 알아냈고 화학계열사 합병은 공시를 보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또, 시장 예상외의 조합이었다. 제일모직의 경우 화학계열사와 합병이 예상됐고 삼성정밀화학-삼성석유화학 또는 삼성BP화학과 다른 화학계열사 합병 진단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삼성SDS-삼성SNS 합병, 제일모직 패션사업 부문의 삼성에버랜드 양도, 삼성에버랜드 건물관리사업의 에스원 양도, 삼성에버랜드 급식업의 물적분할을 통한 삼성웰스토리 설립 등도 예상하지 못했다.

따라서 재계와 시장은 이미 제시된 '나무' 몇 그루를 보고 '숲'의 모양을 추정해야 한다. 전체적인 경영권 승계 구도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 조정의 큰 틀을 알지 못하면 합병이나 분할, 영업 및 지분양수도 퍼즐을 잘못 맞추거나 뒤늦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숲'을 쉽게 보여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여러 업종과 계열을 넘나들며 '나무' 한그루씩 보여주는 방법으로 마지막까지 혼선을 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는 대상 기업가치의 급격한 가격 변동을 막아 사업 조정을 원활히 하는 데 필수이기도 하다. 또,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과 직원 동요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합병 카드가 삼성SDI-제일모직 합병 발표 후 곧이어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패션사업부를 삼성에버랜드에 넘긴 제일모직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삼성SDI와의 합병을 쉽게 만들었다. 삼성 계열사 지분율이 12%에 불과한 제일모직을 사실상 삼성전자 관할에 두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량이 커지게 됐고, 이는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부문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과 화학계열을,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 사장이 패션과 미디어 부문을 각각 맡게 될 것이라는 '계열분리' 시나리오가 더 설득력을 얻게 됐다.

그러나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 발표는 혼선을 줬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석유화학 지분 33.18%를 보유하고 있는데 합병법인에 대한 지분율은 4.91%로 떨어지게 된다. 합병법인의 주요주주는 삼성물산(33.99%), 삼성테크윈(22.56%), 삼성SDI(9.08%), 삼성전기(8.91%), 삼성전자(5.28%) 등이다.

삼성SDI는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최대주주가 된다. 삼성SDI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이다. 결국,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보험→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종합화학의 구도에서 삼성에버랜드의 최대 주주(25.1%)인 이 부회장에게 힘이 실리는 구도다.

그렇다면, 자녀간 계열분리가 아닌 이 부회장이 통째로 그룹을 지배하고 두 자매가 독립경영하는 방식일까.

재계와 시장은 계열분리 없이 경영권 승계나 그룹 경영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거론된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계열분리는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건설 부문 합병이나 지분 거래, 화학 계열사 추가 합병 등이 유력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예상도 추측일 뿐이다.

삼성그룹은 외부 자문사에도 철저한 보안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개별 계열사 합병을 자문한 인사들도 전체적인 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내에서도 오너가를 제외하고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과 일부 사장급 정도만 '숲'의 모양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계열 사업 조정이 미리 새나가면 여러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보안은 필수"라면서 "더구나 삼성그룹의 경우 승계와 맞물려 있어 예상치 못한 카드로 시나리오에 혼선을 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증권부 기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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