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지난해 국내 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 삼성그룹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그간 큰 손으로 꼽혀 온 롯데그룹과 포스코 등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삼성그룹이 M&A 시장에서 새로운 다크호스로 등장한 것이다.

삼성그룹은 특유의 보수적 경영스타일을 고수하면서 그동안 그린필드(Green Field) 위주의 전략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달랐다. 사는 것 못지않게 파는데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국내외 투자은행(IB) M&A 담당자들의 핵심 고객으로 부상했다.

4일 연합인포맥스의 M&A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삼성그룹이 지난해 공식적으로 밝힌 M&A(바이아웃) 건수만도 10건에 육박했다. 계열사 간 합병건까지 합치면 이를 훌쩍 넘어선다.

삼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곳은 단연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에 일본 소니와의 LCD패널 합작사업을 정리하고자 소니가 보유 중이던 S-LCD 지분 3억2천여만주를 1조8천억원을 들여 사들였다.

하드디스크(HDD) 분야 세계 1위업체인 시게이트에 HDD사업부문을 매각하기도 했다. 딜 규모만도 1조5천억원에 육박했다.

주요 사업의 포트폴리오 정비 차원에서 이뤄진 M&A였지만 규모가 작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태양광 사업부를 계열사인 삼성SDI에 넘기기도 했고, 삼성광주전자와의 합병도 마무리 지었다. 지난해 연말에는 삼성LED를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에서 가장 관심을 받았던 딜은 신성장 동력 사업인 헬스케어 분야를 확장하기 위해 의료기기 전문업체인 메디슨의 경영권을 인수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메디슨 인수에만 3천314억원의 돈을 썼다.

관계사와의 지분 정리 등이 아닌 순수 바이아웃 M&A를 위해 삼성전자가 그동안 들인 돈 가운데 액수가 가장 컸다.

삼성전자는 심장질환 관련 검사 기기를 생산하는 미국의 넥서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이외에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들도 M&A 시장에서 활발한 입질에 나섰다.

삼성물산(상사부문)은 8천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미국의 석유ㆍ가스 전문업체인 패러랠 페트롤리엄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이 가운데 삼성물산은 지분 90%를 보유한다.

패러랠은 텍사스주와 뉴멕시코주 등에 생산 유전 8개와 가스전 2개를 운영하고 있고, 3개의 탐사광구도 갖고 있는데 하루 총 생산량은 8천배럴 규모로 총 매장량은 6천900만배럴이다.

삼성토탈은 서해파워와 서해워터를 인수하면서 에너지 발전 부문의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지난해 연말에 극적으로 이뤄진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매각도 시장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삼성카드는 보유 지분 17%를 주당 182만원에 KCC에 매각했다. 총 매각 규모는 7천739억원에 달했다.

에버랜드가 비상장사이고 경영권 매각도 아닌데다, 삼성카드가 투자자에게 어떠한 출구전략도 제시하지 않아 매각이 답보상태에 빠졌으나 KCC라는 '구세주'가 나타나면서 극적으로 M&A가 성사됐다.

이로써 삼성카드는 '금융회사는 비금융회사 지분을 5% 이상 소유할 수 없다'는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따른 법률) 조항의 위반을 해결하게 됐다.

삼성카드는 조만간 잔여 보유지분 3.64%에 대한 매각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계열사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계열사인 아이마켓코리아를 인터파크컨소시엄에 팔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부사장이 총괄한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는 이탈리아의 악어백 전문 생산업체인 콜롬보 경영권을 인수했다.

국내 IB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사업 조정과 함께 새로운 사업 영역 확대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이 삼성그룹이었다. 삼성그룹의 이러한 추세는 올해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3세 경영진들의 후계 구도와 맞물리면 그 범위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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