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 수위를 강화하면서 올해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현대오일뱅크로 불똥이 튈 조짐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0월 IPO 주관사를 선정하고서 본격적으로 상장 준비에 들어갔다.

상장 규모만도 1조∼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IPO였던 삼성생명(4조8천881억원)을 잇는 매머드급 IPO가 될 것으로 점쳐져 왔다.

지난해 결산을 확정하는 3월께 상장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하고, 올해 상반기안에 상장 절차를 마무리짓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이 대(對)이란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고, 미국에 맞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공언하면서 중동지역의 긴장감이 고조되자 예정대로 상장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오일뱅크가 국내 정유사 가운데 이란에서 원유를 도입하는 비중이 가장 큰 데 이란 제재로 수입선이 변경될 경우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가치가 하락할 수 있어서다.

IPO로 자금을 확보해 차입금 상환에 쓰려는 계획을 세운 최대주주 현대중공업과 시설자금 등 성장을 위한 투자비를 마련하려던 현대오일뱅크 모두에게 돌발 악재인 셈이다.

이와 함께 IPO 주관사로 선정된 미국 국적의 씨티와 메릴린치가 적성국인 이란과의 교류와 금융거래 및 자문을 금지하는 포괄적 이란 제재법(CISADA)의 대상 금융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변수가 되고 있다.



◇이란産 원유도입 막히면 기업가치 하락 불가피 = 11일 정유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2010년 말 기준으로 총 도입 원유의 23%가량을 이란으로부터 수입했다.

2천570만 배럴에 달하는 규모로 국내 정유사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다. SK에너지가 전체 도입 물량의 10% 정도를 이란에서 들여오고 있고, GS칼텍스와 S-Oil은 이란산 원유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의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이란산 원유의 도입단가는 배럴당 102.83달러다. 중동 국가인 아랍에미리트(108.6달러), 사우디아라비아(106.29달러), 쿠웨이트(104.71달러) 보다 2∼5달러 정도 싸다.

영국이나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으로부터 들여오는 원유와 비교해서는 최대 배럴당 9달러 가까이 저렴하다.

정부가 일단 이란산 원유 수입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더욱 강화되고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이 가속화하면서 이란으로부터 원유 도입이 막히게 되면 현대오일뱅크는 난처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만일 거래처를 중동지역의 다른 국가로 변경하면 수입 단가가 최소 배럴당 2달러 이상 높아져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2010년 말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기준으로 보면 연간 600억원에 가까운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2010년 현대오일뱅크가 낸 당기순이익 3천72억원의 19%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는 손익과 재무에 큰 변동이 생기는 것으로 상장을 위해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2009년과 2010년 현대오일뱅크의 주당순이익(EPS)은 각각 2천314원과 1천992원. 지난해 실적이 이전에 비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을 감안할 때 예상 EPS는 최소 2천원은 넘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정유업계 평균 주가순이익비율(PER) 13배를 적용하면 1주당 가치는 2만6천원 안팎으로 증권업계에서는 추정했다. 그러나 손익에 악영향을 받으면 1주당 가치에도 막대한 할인 요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주관사의 한 관계자는 "당장 기업가치에 변화가 생겼다고 볼 수는 없으나 상황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IPO 주관사 씨티ㆍ메릴린치 자격유지 여부 관심 = 현대오일뱅크 IPO의 또 다른 변수는 씨티와 메릴린치가 주관사 업무를 계속할 수 있을지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0월 말 대표 주관사로 우리투자증권, 공동주관사로 대우ㆍ하나대투증권과 신한금융투자를 선정했고, 해외 마케팅을 담당할 글로벌 코디네이터로 씨티와 메릴린치를 선정했다.

글로벌 코디네이터는 해외 투자자 유치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사실상 주관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주관사로 선정된 씨티와 메릴린치의 국적이 미국이라는 것.

미국이 2010년 발표한 CISADA 시행세칙에서는 자국 금융사가 이란 정부 또는 관련 단체를 지원하는 금융거래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민사는 물론 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가 상장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이란산 원유를 도입할 경우 씨티와 메릴린치는 이란을 돕는 자금거래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CIASDA 시행세칙에서 금지하는 금융거래의 구체적인 사항들이 기술돼 있지는 않지만 미국 정부가 이들에게 포괄적으로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다.

이는 현대오일뱅크의 IPO 예상 계획에 변화를 줄 가능성도 있다. 신주와 구주 비율, 신주를 통해 유입된 자금의 용도 등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오일뱅크는 잡음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 점을 그대로 안고 가기에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주관사 자격을 박탈하기에도 부담이 적지 않다. 지난해 말 이후 지금까지 준비해 온 작업들이 틀어질 수 있어서다.

씨티와 메릴린치는 CISADA 시행세칙을 빗겨갈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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