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총성은 없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둘러싸고 신경전이 초반부터 상당하다. 직접 겨뤄야 하는 협상단들은 상대편의 수를 읽으려고 말을 아끼고 있고, 외곽에서부터 공방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지난주 방미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미 FTA 협상 폐기' 가능성도 방편으로 거론하면서 강공을 펼쳤다. 이에 대한 미국 측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추 대표가 만난 개리 콘 국가경제자문위원회(NEC) 위원장은 생각지도 못한 한 수를 들고 나왔다.

이달 초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일정에 없던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위해 30분간 헬기를 타고 파주 상공을 선회했지만 날씨 때문에 돌아오고 말았다. 추 대표는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30분간 상공을 돌면서 수도권에 2천500만 명이 살고, 전쟁 나면 이들이 몰살된다는 점을 이해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추 대표를 만난 콘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헬기가 회항한 직후 전화를 걸어왔다며 '여기서 내가 지금 엄청난 것을 목격했다. 공장이 엄청 많다. 이것을 미국에 세우면 안 되느냐'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콘은 이어 한국 부품을 장착해서 완성차를 수출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도 말했다. 추 대표는 콘 위원장의 말을 자동차 부품공장까지 미국에 세워야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명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쇠락한 미국 공업지대의 지지로 당선됐으며, 이민 정책 등을 보면 지지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강공을 펼치고 있다. 콘 위원장이 언급한 부품공장 이야기도 결국 이 지역의 공장 신설, 일자리 창출과도 연결된다. 더군다나 미국은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둔 시점이다. 이달 초 치러진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버지니아주와 뉴저지 주지사를 차지했다. 중간 선거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던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공화당이 참패한 셈이다. 공화당은 31년 만에 세금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세제개편안도 올해 안에 통과를 목표로 밀어붙이지만, 상·하원의 생각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쉽지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 중에 상당한 규모의 미국 제품을 팔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공정 무역을 재강조하면서 FTA 협상은 따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협상의 심리학에서는 조급한 쪽이 상대편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트럼프 지지 열기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미 경제는 일자리 증가세가 둔화하는 양상이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미국 새 일자리는 월평균 17만 명 늘었지만 작년과 재작년 같은 기간 이 수치는 19만 명과 22만 명에 달했다. 일자리 증가세의 둔화는 장기간 이어진 경기 확장기 후반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일자리 증가를 FTA 목표로 삼는 트럼프에게는 심리적 취약점이 될 수 있다. (이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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