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축소 중시하는 문화 탓…경영 성적표 '엉망' 지적도



(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눈에 띄는 '축소 경영'을 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SC은행은 대규모 명예퇴직을 시행하고 영업점도 줄이면서 조직 감량에 나서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극심한 노사갈등에 따른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한국 진출 이후 줄곧 독특한 경영전략을 펼쳤다는 점에서 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SC그룹이 한국 진출 이후 기업고객 비중을 낮추며 리스크를 줄였듯, 유로존 재정위기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자 또다시 리스크를 낮추는 작업에 돌입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SC은행이 경영 성과를 내지 못하자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은행의 규모만을 줄인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 5대 시중은행의 하나였던 제일은행의 위상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이다.

SC은행은 지난해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며 고객 방문이 적은 영업점 27개의 문을 닫았다. 지난해 6월 노동조합이 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며 총파업을 벌인 이후 15곳의 영업도 중지된 상태다.

SC은행측은 파업으로 중지된 영업점을 다시 열지 않을 계획이다. 이미 영업 기반을 잃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12월 사상 최대 규모의 명예퇴직을 시행해 직원 수도 확 줄였다. 전체 직원의 12%가 넘는 829명이 명예퇴직으로 나갔다.

SC은행의 축소 경영은 조직 규모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SC은행의 직원 1인당 충당금 적립전 이익은 1억1천500만원으로 신한과 국민, 우리, 하나, 외환, 기업, 씨티은행 등 다른 8대 시중은행 중 가장 작다.

직원 1인당 충당금 적립전 이익이 가장 많은 외환은행(3억9천100만원)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영업점당 평균 예수금 규모도 1천201억원으로 8대 시중은행 중 기업은행(1천136억원)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SC은행의 한 관계자는 "직원이나 영업점을 줄이는 대신 인터넷뱅킹을 강화하는 등 채널 다각화를 추진해 효율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SC은행이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한 후부터 여타 시중은행과 경영전략이 달랐다는 진단도 나온다. SC은행은 기업고객을 중시하는 여타 시중은행과 달리 소매고객 위주의 영업을 택했다. 기업고객이 오히려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번에도 SC은행은 유로존 위기 발생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자 조직의 효율성을 높여 리스크를 축소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직 은행장인 A씨는 "외환위기(IMF) 이전까지만 해도 개인 고객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는 매우 어려웠다"며 "개인 고객에 대한 대출이 활발해진 것은 씨티은행과 SC은행이 한국에 진출한 이후부터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IMF 때 기업대출이 부실해지며 잇따라 위기를 맞은 한국은행들의 사례를 검토한 후 기업보다 개인 고객 위주로 영업을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가계대출이 기업대출보다 많은 곳은 국민은행과 함께 SC은행 뿐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시중은행 중 최다인 1천122개의 영업점을 보유해 적극적인 소매영업을 펼치고 있어 영업점이 392개인 SC은행과는 사정이 다르다.

A씨는 "리스크를 낮추고자 한국 진출 후 기업고객을 줄인 SC은행이 이번에는 규모를 줄여 경영 효율화를 꾀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모그룹인 SC그룹 입장에서 한국SC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며 "금융시장이 불안정한데 무리해가며 확장경영을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SC그룹이 한국에 진출한 후 성적이 좋지 않았다"며 "성과가 좋지 않은데 따라 2007년에도 행장을 교체하고 영업점을 폐쇄했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효율성이 낮다며 인원과 영업점을 줄이며 조직 규모만 계속해서 작아졌다"며 "SC그룹은 한국의 은행 문화를 바꾸겠다며 큰소리치기보다 경영 성과를 우선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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