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데스크 칼럼]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 고유권 기자
  • 승인 2019.09.03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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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끝 모를 싸움이 시작됐다. 강대강(强對强) 형국이다. 상대에게 타격을 주겠다고 벼른다. 서울이 아닌 1만1천km나 떨어진 미국에 링이 차려졌다. 싸움의 최전선은 수십억을 받는 미국 변호사들이 맡는다. 대화의 여지는 남겼다. 하지만 "먼저 고개 숙여"라는 조건이 달려있다. 사실상 타협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미 서로를 적으로 간주한 탓이다. 먼저 물러설 생각은 이미 버렸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얘기다. LG화학은 인력 빼가기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은 핵심 기술 특허를 도둑질했다며 맞소송에 나섰다. 서로 '법대로'를 외친다.

2006년 개봉한 백윤식(오판수) 주연의 '싸움의 기술'은 사실 좀 웃픈 영화다. 독서실에서 은둔 중인 싸움의 고수 판수. 깝죽거리는 건달의 눈에는 판수의 나무젓가락이 꽂힌다. "너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피똥 싼다". 강렬한 누아르 같지만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왕따를 당하는 약골 송병태(재희)는 싸움의 기술을 원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병태에겐 생존의 문제였다. 그래서 판수에게 떼쓴다.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하지만 판수는 엉뚱한 기술들만 가르친다. 빨래를 짜게 하고, 동전 던지기를 연습시킨다. 불만이 가득한 병태에게 판수가 던지는 말. "집에 돈 좀 있어? 돈 없으면 그냥 맞아. 이빨 하나 날리면 얼마 물어줘야 하는지 알아?". 기술을 배울 것이라 한껏 기대에 부푼 병태 입장에선 황당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말속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다. 싸움의 기술에 앞서 인생의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법대로'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역사도 길다. 2011년부터 거의 매년 특허 문제로 싸움을 벌여왔다. LG화학이 이기기도, SK이노베이션이 이기기도 했다. 그만큼 악연이 길다는 얘기다. 사실 두 회사가 벌이는 이번 소송을 두고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평가하고 싶진 않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됐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어서다. 기업들은 자사의 자산과 핵심기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임직원과 주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하지만 수년간 계속 소송이 반복되고 있다면 무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자동차 시장 재편으로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로 떠오른다 해도 서로의 '피똥'을 봐야 할 정도인가. 글로벌 톱3에 들지도 못하는 우리 기업끼리 이렇게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중국과 일본 배터리 기업들은 미소를 짓고 있다. 국익 훼손이라는 고리타분한 지적을 하는 게 아니다. 자강의 노력만으로 세계 톱3에 들어가기에 우리 기업들의 체력은 단단하지 못하다. 서로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범위 한도에서라도 서로 협력해 볼 생각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동업을 해 본 LG와 수많은 기업과 조인트벤처를 해 본 SK가 벌이는 이런 싸움은 낯설다.

멀리 미국까지 가서 싸울 필요도 없다. LG와 SK 본사의 물리적 거리는 직선거리로 7km 남짓에 불과하다. 굳이 1만1천km 떨어진 곳까지 가서 왜 싸우는가. 중간쯤인 마포에서 최태원 회장과 구광모 회장이 만나 소주 한잔할 것을 권한다. 직원을 빼갔네, 기술을 탈취했네, 특허를 도둑질했네 하면서 싸우지 말고 대화부터 시작하라. 매년 이런 식으로 싸움질만 하다가는 글로벌 톱3 근처에는 갈수도 없다. 판수가 병태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치고받고만 하는 게 다가 아니야. 인생 살아가는 하나하나가 싸움이지".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18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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