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 기류에 영국 '상품개입' 감독체제 도입

시장에 뒤쳐진 금융당국 비판에 은성수 "기능·역할 고민"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금융당국이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와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감독당국의 무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에 금융회사의 상품 판매과정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제조과정부터 들여다볼 수 있는 사전 감독체계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내달 시중은행 준법감시인 대상 워크숍을 열어 소비자 보호와 관련한 내부통제 지침을 전달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해당 워크숍을 통해 은행이 DLF와 같은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 대한 보완조치를 요구할 방침이다.

은행 고객의 경우 원금보장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은 만큼 원금 비보장 상품은 경우 자체적으로 판매 지점이나 직원, 대상 고객을 제한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토록 할 계획이다.

이는 금융회사의 '판매' 과정에 초점을 둔 당국의 감독체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은행이 판매하는 신탁에 DLF와 같은 고위험 상품을 편입할 수 없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후 약방문격 조치에 불과하단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미 만들어진 시장을 위축할 뿐 시장이 어떻게 제대로 구축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감독당국의 고민이 없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현실적인 억울함을 피력한다. 지난 2015년 이후 금융회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자율성을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감독당국의 검사 권한은 축소됐다. 4년 만에 부활한 종합검사가 올해부터 시작됐으나 이 역시 '유인부합적' 이란 수식어에 초점을 둔 컨설팅 개념의 모니터링인 까닭이다.

다만 비슷한 시기 영국에선 '상품 개입'으로 불리는 사전 감독수단이 도입됐다.

국내에서 보험사나 카드사가 제공하는 채무면제 유예 서비스와 비슷한 지급보장보험이나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한 모기지 상품의 불완전판매가 늘어나서다.

영국의 금융당국(FSA)도 우리나라처럼 판매 절차에 치중한 규제를 해왔다. 하지만 갈수록 복잡해지는 금융상품은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했다.

이에 FSA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상품 '조기개입(earlier intervention)' 체제의 감독을 도입했다.

기존 금융서비스법을 개정해 FSA가 상품에 개입할 권한을 부여하고 상품의 개발부터 판매 전략 수립, 판매, 사후관리에 걸친 단계별 규제를 마련했다. 판매단계에 머물러 있던 규제의 초점을 제조 단계까지 확장해 금융회사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단 상품에 대한 개입은 소비자 피해나 시장의 실패가 예측되는 징후가 나타날 때만 가능하도록 했다. 상품의 구조가 불투명하거나 꺾기에 해당하는 판매, 이중 수수료, 과대 수익보장, 취약계층을 타겟팅 한 상품 등이 그 예다.

또 상품에 대한 개입수단도 단계적으로 뒀다. 상품의 개발 단계부터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거나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 판매 중지, 상품 개발단계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제한하는 가격 상한제 등 그 수단만 10여가지에 달했다.

영국의 금융투자와 자산운용사 등 현지 금융회사도 사전 감독체계에 대한 반발이 작지 않았다. 하지만 소비자 보호 필요성이 강화하자 영국 금융당국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전적인 수단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조기개입 체제를 유지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융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긴 마찬가지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DLF 사태의 당국 책임론을 제기하는 여야 의원들에게 "감독당국이 앞으로 어떤 기능과 역할을 잘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급격하게 변하는 데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도 있고 인력 문제도 있다"며 "시장과 친화적으로 나가면서도 이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강조했다.

전일 국회 정무위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2011년 법안이 발의된 지 9년 만이다.

금소법을 계기로 금융당국은 소비자 피해가 예상될 경우 금융상품 판매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판매제한 명령권이 생겼다. 소비자는 위법계약 해지권도 갖게 됐다.

하지만 판매행위를 넘어 금융회사 스스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안착하기엔 제도적 시스템이 촘촘하지 못하단 지적이 많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감독체계를 강화하는 추세임은 분명하다"며 "규제를 통해 시장을 위축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jsjeong@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20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