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예원 기자 = 지난 2014년 8월 영국 A은행은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바로 지난해보다 200% 넘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에 금융당국이 '정지 신호'를 켰기 때문이다. 해당 시장은 조건부자본증권, 이른바 '코코본드'였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시 코코본드는 발행 규모가 약 440억 달러로, 1년 전인 2013년 143억달러 대비 약 200% 넘게 늘어나는 등 유럽계 은행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코코본드에 상품개입조치를 시행해 판매를 금지했다. 상품개입조치는 소비자 피해가 예측되는 금융상품에 대해 사전 승인, 판매 중지, 가격 개입 등을 할 수 있는 조치다.

당시 코코본드는 바젤Ⅲ 하에서 자기자본으로 인정되는 신종자본증권인데다 초저금리 환경에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은행과 투자자의 잇속이 맞아떨어지는 상품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3월 코코본드 평균 금리는 5.8%로, 10년 만기 미국 국채(2.7%)와 영국 국채(2.7%) 금리보다 높았다.

지난 2009년 코코본드를 최초로 발행한 영국 로이드은행도 당시 낮은 채권 수익률과 예금금리 상황 하에서 개인투자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약 10%의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금융당국은 높은 수익률 이면에 있는 원리금 손실위험에 주목했다.

코코본드는 발행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등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원리금이 자동으로 상각처리되는 위험이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과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은행에 유리한 조건으로 상품이 개발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개인투자자는 이러한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워 일방적인 손실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코코본드 판매가 금지된 것이다.

영국 금융당국은 개인투자자에 대한 판매 행위를 1년간 금지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두 달 뒤 임시 상품개입조치를 시행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5년 10월 해당 조치는 영구 조치로 전환됐다.

영국 금융당국이 상품개입조치를 발동시킨 유일한 사례다.

이러한 영국의 사례는 최근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발생한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영국 역시 사후 감독방식만으로는 광범위한 소비자 피해 발생을 방지하지 못하자 개발 단계부터 적정성을 점검하는 감독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 것인데, 우리나라 역시 DLF 사태 이후 사전적인 감독수단을 보유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DLF 대책으로 은행들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조치 제한을 내놨고, 금융당국의 판매제한명령권이나 소비자의 위법계약해지권 등을 규정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지난 25일 국회를 통과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상품 사전 심사는 은행이나 증권, 보험 등 모든 권역에서 거의 자율화돼 있다. 일일이 약관이나 세부사항을 체크하는 것이 강한 규제라고 해서 풀어준 것"이라면서 "앞에서 풀어줬으면 강한 제재 등 사후적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여태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징벌적 제재나 판매 조치 제한 등이 포함된 금소법을 통해 우리나라도 영국과 유사한 흐름을 밟아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은행권 신탁 판매 제한조치의 경우에도 업권과 소통 부재로 인한 반발이 심한 만큼 이를 줄일 수 있는 금융당국의 소통 노력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상품개입조치 발동을 위해서 우선 금융상품 위험지표를 활용해 피해를 예측하고 공개의견수렴을 거쳐 개별 상품에 대한 규제사항과 개입 수단을 실행하는 등 단계적인 도입을 통해 업권 반발을 줄이고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DLF 사태의 핵심은 소비자 보호의 큰 전환점으로, 소비자 이익 중심으로 금융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면서 "정당한 판매를 통해 고객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결국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는 길이라는 방향으로 경영원칙을 수립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yw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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