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한화그룹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가 5년간 6차례 현장조사에 나섰으면서도 무혐의 결론을 내면서 기업 부담만 가중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가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인 한화S&C에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켰다는 의혹에 대해 심의를 한 결과 사실관계 확인과 정상가격 입증 등이 부족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24일 밝혔다.

공정위의 한화 일감 몰아주기 조사는 2015년 국회에서 처음으로 문제 제기가 된 뒤 공정위가 직권인지로 조사하기 시작한 사건이다.

2015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한화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 김승연 한화 회장 아들 3형제가 지분을 가진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한화S&C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었다.

공정위는 이후 5년간 한화와 한화S&C, 에이치솔루션, 한화건설, 한화에너지, 벨정보 등 6개사에 대한 현장 조사에 나섰다.

단발성 조사에 그치지 않아 한화그룹은 총 10차례, 44일간의 현장 조사를 받았다.

업계에서는 조사가 시작될 당시부터 공정위가 혐의점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켰는지를 판단하려면 한화 계열사가 내부거래를 하지 않았을 때 써야 하는 비용을 산정해야 하는데 고객사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해주는 IT서비스 특성상 정상 가격을 산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국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입증할 중요한 증거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한화그룹은 공정위가 무혐의 결론을 내자 "공정위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한다. 앞으로도 공정한 거래와 상생협력 문화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짧은 입장을 내놓았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한화그룹과 같이 기업들이 공정위 조사 이후 무혐의 결론이 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대리점에 부품 구매를 강요한 혐의로 회사와 전직 임원들이 검찰 고발을 당했지만 무혐의 결론이 났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역시 계열사 허위 신고 혐의로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했지만,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처럼 무혐의 결론을 받아들어도 기업들이 장기간에 걸친 조사로 받은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없다.

공정위가 조사에 나서면 기업은 거액의 수임료를 들여 변호인을 선임하고, 임직원들은 자료 제출과 조사에 응해야 한다.

공정위 칼끝이 두려운 기업들은 또 경영 행보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번 사건과 같은 공정위의 직권인지 조사가 무혐의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공정위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2015∼2018년 사건처리 현황자료'에 따르면, 공정위의 기간 직권인지 조사는 3년간 1천765건에서 1천958건으로 11% 증가했다.

직권인지 조사와 함께 무혐의 처분 건수도 늘며, 2015년 직권인지 조사의 무혐의 처분 건수는 33건으로 전체 직권인지 조사 건수의 1.9%를 차지했지만 2018년에는 175건으로 전체의 9%로 늘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영향력에 공정위가 밀리면서 혐의 입증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현대모비스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사건의 경우 현대모비스가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했다.

당시 공정위는 1천여개 현대모비스 대리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을 때 일부 대리점들이 부품 밀어내기가 있었다고 답한 내용을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상당수 대리점이 검찰에서 피해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거나 검찰 출석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차피 현대모비스와 계속 거래를 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서 실명으로 나설 대리점은 없었다.

공정위는 이번 한화그룹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서도 한화 임직원들이 철저히 함구하면서 총수나 개인 고발 의견을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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